중국 당(唐) 현종(玄宗·685∼762)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다. 위황후가 황제였던 중종을 독살하고 제위에 오르려고 할 때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진압했다. 제위에 오르고 나서는 정변을 꾀하던 태평공주 일당을 진압하고 ‘개원의 치’라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강직한 성품의 한휴를 재상으로 기용했는데 한휴는 현종이 잘못을 할 때마다 면전에서 서슴없이 지적했다. 언젠가 주위에서 “한휴가 조정에 들어온 이후로는 폐하께서 단 하루도 즐겁게 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왜 한휴를 내치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자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태평성대를 구가한 현군다운 대답이다.
그러나 이런 현종도 양귀비(楊貴妃)의 치마폭에 빠져서는 총기가 흐려졌다. 현종은 양귀비의 친척 오빠인 양국충을 재상으로 앉혔는데 이때부터 조정에는 간신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양국충은 사사로운 은혜나 원한 관계로 관리를 등용하거나 일을 처리하곤 했다.
안녹산도 이때의 관리 중 한 명이다. 안녹산은 뚱뚱하고 배가 나왔는데, 현종이 농담으로 “그대 뱃속에는 무엇이 들었소?”라고 묻자 안녹산은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이 가득 차 있을 따름이옵니다”라고 대답했다. 현종은 몹시 기뻐하며 안녹산을 ‘나라를 지킬 대들보’라고 칭찬하며 양귀비의 양아들로 삼게 했다. 하지만 그 안녹산이 몇 년 후 15만 대군을 이끌고 범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장안으로 쳐들어오는 반란군을 피해 현종은 사천으로 피신했다.
이처럼 간신은 충신처럼 보이고 충신은 때로 군주의 미움을 받는다. 어떻게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가. ‘정치 혼란’의 시대에 짚고 넘어가 볼 만한 화두다. 이 책은 역사를 거울로 ‘간신을 구별하고 제압하는 방법’을 찾는다. 기획부터 독특하다.
육도(六韜)나 사기(史記), 여씨춘추(呂氏春秋) 등의 고전에 나온 ‘간신 구별법’도 흥미롭지만 이들의 간신 구별법이 ‘계급적 한계’ ‘불완전한 체계’ ‘비과학적 방법’ 등의 이유로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1991년 중국인민대 출판사에서 나온 ‘변간신론(辨奸新論)’을 편역자가 체제를 바꿔 새롭게 꾸몄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