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28일 이스라엘 강경파 리쿠드당의 당수인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템플 마운트(Temple Mount)를 방문했다.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도는 이 ‘이방인’의 방문을 ‘침입’으로 규정하며 분노했고,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2차 봉기의 시발점이 됐다. 예루살렘에서 기원전부터 계속돼 온 이런 현상은 역사 속에서 등장인물만 바뀔 뿐 지금까지도 반복된다.
예루살렘의 ‘템플 마운트’는 말 그대로 사원이 세워진 언덕이다. 문제는 그곳이 유대인과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 모두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 성지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그곳은 솔로몬왕이 유대교 성전을 지은 곳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한 현장이며, 이슬람교도에게는 마호메트가 승천한 성지다.
이 책은 150년 전통의 세계 최대 뉴스 에이전시인 로이터통신 기자들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비극적 역사와 현실을 직접 인터뷰한 글과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전세계 230개 지국에서 26개국 언어로 하루 800만 단어가 넘는 기사를 전송한다. 그 생명력은 신속, 정확, 그리고 중립성. 이들은 이 책에서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편견 없이 전해주려 노력한다. 가치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대규모 장례식이 뒤따르며 더 많은 복수와 폭력이 일어난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 죽음과 장례식은 위성 TV를 통해 아랍권 전체에 방영되어 더 큰 분노를 자아낸다. 이스라엘 사람이 죽을 때마다 이스라엘인들의 분노도 깊어지고 보다 강경한 무력대응이 나타난다.
수천명의 사상자를 낳은 팔레스타인 2차 봉기도 12세 소년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피하다 아버지의 품에서 참혹하게 숨지는 장면이 전세계에 방영되고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이 팔레스타인 군중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이 전해지면서 본격화됐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자기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앗아간 나라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듣는다. 이스라엘 사람은 테러리스트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자기 나라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 거의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느닷없이 이스라엘과 PLO가 서방의 어느 도시에서 수개월 동안 십여 차례의 비밀 협상 끝에 오랜 세월 이어온 상호 적대를 끝내고,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며 평화정착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로 팔레스타인 주민의 자치권을 보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라파트 PLO 의장은 평화협상을 하면 할수록 팔레스타인에서 신뢰도를 상실해 가는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평화협정에 적극 나섰던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나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모두 자국민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이 지역의 비극은 기원전부터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 직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분쟁을 영구화하는 악의 순환이 가속화됐다. 이제 무슬림은 자살테러라는 더욱 격렬한 방법을 선택했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이들을 협상 대상이 아닌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몰아가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생생한 글과 사진으로 보여주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