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일관된 정책 속에 장기적 투자가 이뤄질 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소 통폐합이 이루어지고 과학기술 정책도 일관성 없이 바뀌어왔다. 관련 장관이 자주 바뀌고 비전문가가 장관을 맡아 정책의 혼선을 초래했으며, 임기 중에 터뜨릴 상업적 연구를 선호하고,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기초과학을 등한시했다.
이런 점에서 새로 뽑힌 대통령은 과학기술 정책의 주도자로서, 이견을 보이는 세력에 대해서는 갈등을 조정해 합의를 유도하는 정책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공계를 전공하면서 인문계 전공에 비해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활용 가능한 전문가가 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된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결과는 지금 피부로 느낄 수 없지만 앞으로 몇 년 뒤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큰 저해 요인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중국은 정권교체에 영향받지 않는 일관된 과학기술정책 추진 체계를 갖고 있으며, 최근 국가주석이 된 후진타오를 비롯한 당 상무위원 24명 중 80%가 이공계 출신으로 포진해 있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외환위기 때 정부출연 연구기관 및 대학에 구조조정 압력이 들어왔을 때 그나마 대학교수는 학생들을 배경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은 목소리 한번 못 내고 직장을 떠나야 했다. 살아남은 연구원들은 퇴직금이 정리되고 정년이 단축됐다. 곧바로 밀려든 ‘연구과제 중심 운영제도(Project Base System)’와 연봉제에 저항 한번 못 해보고 그대로 몸을 맡겨야 했다. 출연연구기관은 평범한 2류 직장으로 전락해버렸고, 이러한 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연구원들은 자리만 있으면 대학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결과는 사회 전반에서 과학기술인을 홀대하는 분위기와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요즘의 출연연구기관은 좋은 연구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우선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므로 연구원간에 위화감이 조성된다. 아울러 연구원들이 연구비 수주를 많이 따려고 본연의 업무는 본인이 벌어들인 인건비로 채용한 비정규직 인력에 맡겨두고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과학기술인의 사기진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무엇보다 출연연구기관의 육성이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이 대학교수 봉급의 3배를 받던 꿈같은 시절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정년(停年)이라도 대학교수와 같게 해 연구원의 자존심을 다독거려야 할 것이다. 당장 활용 가능한 석·박사 위주의 인력 운영도 앞으로의 인력 양성 차원에서 학사 출신을 뽑을 수 있도록 예산 및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대학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이공계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곳은 기초과학을 주로 연구하는 출연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학졸업 뒤에도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이공계 기피를 막을 수 있다. 또한 기술직 공무원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이공계 육성의 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유재명·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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