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유전자’는 없다. 인간의 입장에서 쓸모가 적다고 여긴 것에 ‘잡(雜)’자를 붙인 것뿐이다.
방가지똥, 까마중, 닭의덩굴…. 이름만큼이나 다채롭고, 눈물겹도록 연약하지만 또한 강인한 이 풀들을 저자는 ‘야생초’라 부른다. 이 책에는 14년 동안 들풀을 다룬 관찰과 실험, 실망과 희망의 이력이 담겨 있다.
어떤 농장이었을까. 그것은 세로 몇 뼘, 가로 몇 걸음에 불과한 교도소 마당.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저자는 함께 ‘스터디’를 하던 친구가 평양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간첩이 된다. 서른에서 마흔넷까지,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이 감방에서 흘러갔다. 머리라도 벽에 짓찧고 싶은 고난의 시간, 그는 들풀을 기르며 견딘다.
모든 자원이 알뜰살뜰 쓰이는 감방 안에서는 국화꽃 몇 송이, 아니스 씨앗 두어 개, 쑥 한 잎이면 다도(茶道)에 심취할 수 있다. 비름은 입맛 없을 때마다 찾는 ‘제2의 주식’. 제비꽃도 훌륭한 ‘야초무침’의 재료가 된다.
그러나 관찰과 ‘향내 맛보기’를 지나 저자는 몇 발짝 더 나아간다. 한 뼘씩의 자유와 창만 주어진 그곳에서 풀은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이며 현자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야생초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소박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있을지언정 남을 우습게 보는 교만은 없다.(…) 크건 작건, 못생겼건 잘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
4년 전 풀려난 뒤 전남 영광에서 본격적인 농군 생활에 들어간 저자는 2년 동안 유럽에 체류하며 생태농법을 연구한 뒤 귀국, ‘생태공동체 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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