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정을 이끌어낸 한국인 원폭 피해자 곽귀훈(郭貴勳·78·경기 성남시 분당)옹. 그는 지난 5년간 눈물어린 ‘투쟁’을 벌여왔다.
곽옹은 1998년 오사카(大阪) 지법에 ‘일본 정부가 원폭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원호수당을 일본 밖에 거주한다고 해서 못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지난해 6월 1심에서 승소했고 올 12월5일 오사카 고법 2심에서도 승소해 일본 정부가 이번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원폭 피해자는 어디에 있든 원폭 피해자”라는 곽옹의 주장이 승리한 것이다.
이로써 한국 북한 북남미 등 일본 밖에 거주하는 5000여 원폭 피해자들이 1인당 400만원가량의 보상금을 매년 받을 수 있게 됐다.
판결 직후 귀국해 분당에 머물고 있는 곽옹은 23일 “일본 정부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지만 감사할 이유는 없다”며 “이제야 비로소 한국인의 긍지를 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44년 9월 전주사범학교 5학년이던 곽옹은 일본군 히로시마(廣島) 서부 제1부대로 징병됐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듬해 8월 곽옹은 원폭 투하 지점에서 약 2㎞ 떨어진 공병대에 파견근무 중이어서 목숨은 건졌지만 상반신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해 9월 귀국한 곽옹은 67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를 결성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65년 한일협정으로 보상은 끝났다”는 대답만 들었다.
곽옹은 동대부고 교장을 정년퇴임한 89년부터 본격적인 권리찾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98년 5월 입원 치료차 일본에 간 뒤 7월 귀국하면서 수당지급이 중단되자 10월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시민단체, 의원들의 지원과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이뤄진 7명의 인권변호사가 무료 변론으로 힘을 보탰다.
곽옹은 “광복 57년이 됐지만 아직 우리의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언론의 더 많은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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