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시설에 대한 봉인과 감시장치를 모두 제거한 24일. 수많은 인파가 성탄전야를 즐기기 위해 쏟아져 나왔지만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평온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은 즉각 이라크와 북한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했던 1994년 6월14일 상황은 전혀 달랐다. 라면 쌀 생수 같은 생필품을 사재기하려는 발길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대북 제재 논의가 본격화하자 외국 언론들은 서울에 전쟁특별취재팀을 파견했고 국민들은 전쟁 발발 위험에 떨었다. 북한이 핵개발 비밀계획을 시인한 데 이어 제네바합의에 따라 동결된 핵시설 봉인 제거로 증폭된 이번 핵위기는 1차 핵위기에 비해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 추출에 돌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1차 핵위기 때 안보과민증 반응을 보였던 국민들이 이번에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다. 국민 의식이 성숙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안보불감증에 빠진 것 같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우선 정부의 태도가 바뀌었다. 1차 핵위기 당시 김영삼(金泳三) 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남북 당사자 해결원칙을 고수하려 애썼다. 북한의 남북대화 거부로 어쩔 수 없이 북-미 고위급회담을 양해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어깨 너머로 협상이 진행돼선 안 된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북한 핵문제는 북-미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고 있다.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사안이 아니므로 북-미 대화를 ‘중재’하겠다는 태도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입장도 비슷하다.
정부의 태도가 바뀌면서 국민들의 의식도 변했다. 1차 핵위기 때 많은 국민들은 북한 핵무기의 1차 표적은 남한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쟁 불안에 떨면서 사재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다수 국민들은 북한 핵문제를 남의 집 불 보듯 하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 해제와 핵무장 시도를 대미 협상을 겨냥한 벼랑끝 전술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통일 후 우리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이런 변화에는 햇볕정책도 한몫 했다.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객이 계속 북한을 찾는 모습을 보고 설마 북한이 남한에 핵 공격을 하겠느냐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생각은 위험하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남한이 볼모가 될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가 악화돼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국 핵 공격 대상이 된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 저지를 위해 무력을 동원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94년 여름에도 우리 정부와 사전 상의없이 영변 핵시설 폭격계획을 세운 뒤 실행하려다 중단한 바 있다. 미국은 북폭에 대비해 주한 미대사관 직원가족들을 본국으로 송환했었다.
우리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지 못할 경우 현실은 이처럼 냉혹하다. 정권 이양기에 다시 터진 북한의 핵도박에 우리의 명운이 걸려 있다.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김차수 정치부 차장 kim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