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노당선자가 경계할 것들

  • 입력 2002년 12월 25일 19시 20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자 그가 추진할 변화와 개혁에 대한 기대와 그 변화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불안감이 엇갈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의 변화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국민의 시선은 지금 정치권의 발빠른 정치개혁 움직임에 집중되고 있다.

노 당선자 역시 ‘개혁대통령과 안정총리’라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2004년 총선 때 중대선거구제의 도입과 원내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채택 방침을 밝히는 등 과감한 개혁을 예고했다. 낡은 정치 타파가 모든 개혁의 기초라는 점에서 국민의 관심은 크다.

노 당선자는 선거 후 첫 기자회견에서 개혁은 ‘물 흐르듯’ 추진되어야 한다고 밝혀 신중한 개혁추진 방침을 다짐했다. 어느 권력자이든 집권 초기에는 초심(初心)이라는 것이 있어 겸손하기 마련이다. 노 당선자도 첫 기자회견에서 “선거 때 나를 반대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대통령으로서, 심부름꾼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국민의 불안감이 가시기에는 이르다. 적잖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안심하지 못 하는 이유는 그가 ‘개혁적’이어서가 아니라 종래에 보인 돌출행동이 취임 후 어느 때 불쑥 나타나 그의 개혁 드라이브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집권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나름대로 자신감이 생겨 그때부터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노 당선자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본인의 겸허한 자세가 가장 중요하지만 야당 시민단체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필수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노 당선자를 불안해 하는 다른 이유는 그의 당선이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고조된 반미감정과 ‘2030세대’의 ‘영파워’에 힘입은 점이다. 이 젊은 세대는 월드컵 때 거리응원의 주역이었으며 ‘촛불시위’에서 다시 이름을 떨쳤다. 이들의 대규모 항의가 대등한 한미관계 수립과 국가적 자존심의 회복에 기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촛불시위는 대선이 끝난 다음인 지난 주말에도 계속되어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다가 경찰과 충돌하는 사태를 빚었다. 이 시위 사태를 주관한 주최측은 김대중 정부의 방침과는 달리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선이 아닌 ‘개정’을 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미 부시 행정부가 굴복할 때까지 압력을 넣겠다는 기세이다. 이 같은 대미 요구가 이제부터는 고스란히 노 당선자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촛불시위는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1968년 5월의 프랑스 학생혁명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들이 낡은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해 ‘위대한 거부’라는 평가를 받은 점에서, 한국의 ‘2030세대’가 기존의 가치에 맞선 것과 비슷하다. 젊은 세대의 열정은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되면 21세기의 밝은 한국을 창조할 에너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맹목적 민족주의적 열정 때문에 반미로 흐르는 사람들도 많다. 일부겠지만 ‘2030세대’의 이념적 지향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진보(좌파이념)와 개혁(현상타파)을, 그리고 보수(우파이념)와 수구(현상유지)를 동일시한다. 이번 대선 결과가 비운동권에 대한 운동권의 승리라는 풀이도 있다.

최근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의견이 전체적으로는 54.8%이지만 20대에서는 찬성(47.2%)이 반대(42.4%)보다 많다고 한다. 외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는 20대의 75.5%와 30대의 67.3%가 미국을 싫어하고, 20대의 55.4%와 30대의 58.5%가 북한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의 북한에 대한 인식변화는 국민을 평화무드에 빠지게 한 햇볕정책의 결과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미군 철수 요구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젊은 세대가 노 당선자의 강력한 민족주의 성향에 공감해 그를 지지한 사실은 그의 북한 핵문제 해결과 대미 정책에 멍에가 될 수도 있다. 노 당선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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