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보보스’ 겨냥 광고에 전문가모델 부쩍 기용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5시 02분


우홍승기 하나법무법인 대표변호사(대우증권 모델) 사진위, 자매음악가 권민경 윤경씨(한국피앤지 모델)
우홍승기 하나법무법인 대표변호사(대우증권 모델) 사진위, 자매음악가 권민경 윤경씨(한국피앤지 모델)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에, 경제적 여유에, 번듯한 외모를 갖춘 전문 직업인들은 대중(大衆)이 모방하고 싶어하는 우리시대의 ‘모델’이다. 매스미디어가 TV드라마나 CF를 통해 끊임없이 이런 이미지를 변주해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 광고업계에서는 ‘완벽한 가짜’보다는 ‘진짜 같은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연예인의 완벽한 연기보다는 전문 직업인들의 어설픈 연기로 이뤄진 CF가 앞다퉈 나오고 있는 것.

광고업계가 전문가를 동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타이틀’ 자체만으로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여기다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한 상품이 늘어나면서 타깃층에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민병진 서울치과병원 원장(대우증권 모델),한의사 김소형씨(대우전자, 오뚜기 등 모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씨(한국피앤지 모델)왼쪽부터./사진제공 오리콤·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러한 추세에 맞물려 전문 직업인들이 잇따라 TV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전문가 10명을 접촉했을 경우 7, 8명이 꺼렸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스스로를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는 게 모델에이전시측의 설명이다.

●나도 모델이 되려면

전문가 모델은 보통 모델 에이전시에서 발굴해 낸다. 모델 에이전시는 ‘연예인’ ‘전문가’ ‘일반인’으로 나눠 모델을 관리한다.

광고대행사가 어떤 상품광고에 대해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면 거래하는 모델 에이전시에 리스트를 요청한다. ‘40대 의사, 독특한 개인 취미를 지닌 남자’라는 식으로 범위를 정해주면 에이전시에서 작업에 착수한다.

에이전시에서는 평소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 항목을 정해 잡지나 신문,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기록해두고 사진을 스크랩해 둔다. 특이한 직업이나 특별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을 경우도 스크랩 대상이다. 그러나 매번 리스트를 요청받을 때마다 인물들은 업데이트된다.

업데이트를 위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쪽은 인터넷. 키워드 검색이나 기사 검색 등을 통해 적합한 인물을 찾는다. 따라서 스스로 모델이 되고 싶다면 개인 홈페이지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깨끗이 올려두는 등 홈페이지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신문과 잡지를 뒤적이는 경우가 많다. 신문 잡지의 경우 해당 업계에서 실력 있는 사람들을 다룰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광고주들도 완전히 낯선 얼굴보다는 그래도 어디에선가 본 듯한 얼굴을 선호하기 때문에 언론에 사진과 함께 자주 등장한 사람이라면 유리하다.

때로는 구청 복지회관과 대학도 중요한 소스가 된다. 최근에는 단순한 전문인보다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는 전문인이 광고모델로 선호되기 때문이다. 사회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전문인을 찾기 위해 복지회관에서 후원자를 확인하거나, 대학 서무과를 통해 강사를 겸임하는 전문인의 평판을 듣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협회를 통해 사람을 추천받기도 한다. 협회는 회원들의 연락처를 모두 갖고 있는 데다 출중한 외모, 독특한 취미 등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 사람을 손쉽게 찾아주기 때문이다. 에이전시에서는 ‘이너 서클’에서 추천하는 사람이면 믿을 만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광고모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평소 인적 네트워크를 잘 닦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발굴된 전문가 모델 리스트를 에이전시는 광고대행사에 넘겨주며, 대행사에서는 이 가운데서 적합한 인물이 발견될 경우 사진과 카메라 테스트를 요구한다. 때로 광고컨셉트가 바뀌거나 적합한 인물이 없어서 새로 리스트가 작성되기도 한다.

최종 후보자가 2∼3명으로 압축되면 모델료에 대한 조율에 들어가며 광고대행사는 모델료와 제품에 적합한 이미지 등을 고려해 한 명을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전문가는 에이전시를 통해 모델 계약을 맺게 된다. 대체로 계약서에 명기된 기간 중 경쟁 회사의 광고에 출연하지 못하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위약금을 물게 된다.

모델 에이전시 개성시대의 박다나 실장은 “최근 광고모델을 필요로 하는 매체가 공중파 TV뿐만 아니라 라디오, 극장, 홈쇼핑 등 케이블TV, 인터넷, IMT2000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모델 층도 세분화되는 것 같다”며 “전문가 모델도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모델 에이전시는 서울시내에서만 100여곳,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80여군데가 성업 중이다.

●활짝 핀 자기 PR 시대

대우증권의 ‘플랜마스터’ 광고를 진행하고 있는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이홍록 부장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몇 년 전 한 전문가에게 가구회사 광고에 출연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던 기억이 있는 그는 요즘은 요청하는 사람마다 너무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어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전문가 광고가 히트하면서 많은 전문 직업인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는 자신이 ‘살사’ 동호회를 이끌고 있는데 모델로 쓸 의향이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앞으로 컨셉트가 맞는다면 적극 고려할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연기에도 적극적이어서 광고를 찍다 보면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다시 찍자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삼성증권의 세무컨설턴트 류우홍 차장(41)은 아직 광고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이미지에 맞는 광고가 있다면 등장할 생각이 있다. 그는 국세청에서 조사업무를 하다 2000년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 자산 100억원대 이상인 사람들을 고객으로 관리하다 보니 류씨는 패션전문가에게서 개인적으로 코디네이션에 대한 조언도 듣고 있다. 한때 고객발굴을 위해 메이크업을 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켜 지금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도록 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개인자산컨설팅 전문회사를 차리고 싶은 생각이 있다.

“명품이나 공익광고에 한번 등장하고 싶다. 개인 재산은 벌 만큼 벌어뒀기 때문에 광고료는 안 받아도 좋다. 대신 나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으면 그만이다.”

모델 에이전시 피터팬의 최희진 대리는 “3년 전에 한 식품 광고를 찍기 위해 대학 교수를 만났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었다”며 “예전에는 이처럼 거절하는 사람이 70%이상이었다면 최근에는 70∼80%가 모델료만 맞다면 나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효과는

광고업계에서는 최근 ‘보보스’를 타깃으로 한 상품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전문가모델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보고 있다. 금융상품, 전자제품, 자동차, 고급아파트 등에서 실제로 전문가 모델들이 활약하고 있다.

전문가 모델을 쓸 경우 광고효과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측정하기는 힘들다. 상품 자체가 대중성을 겨냥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신 모델이 속한 전문가그룹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 그 광고는 성공했다고 본다. 모델의 인맥 자체가 타깃 고객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유명 치과의사는 광고에 등장한 뒤 동문회에 가면 2시간 내내 자신의 광고출연 이야기가 화제가 된다고 했다. 어떻게 캐스팅됐는지, 돈은 얼마나 받았는지, 자신도 출연할 방법은 없겠는지를 주로 물어온다고 한다. 이 의사는 보보스를 대상으로 한 금융상품 광고에 출연했었다.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는 보다 효과 측정이 쉽다. CJ의 ‘햇반’ 같은 경우 전문가 모델이 등장한 뒤 제품을 사고 싶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CJ측이 주부를 대상으로 자체조사한 결과 이 광고가 나가기 전인 7월에는 25.1%였으나 9월말 광고가 나간 뒤에는 10월 35.0%, 11월 39.6%였다는 것이다.

제일기획 김시래 차장은 “케이블 TV 등 매체가 크게 늘어나고 리모컨을 통한 프로그램 서핑이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이 광고를 잘 보지 않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편에서는 제품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기법이 동원되고, 또 한편으로는 작위적이지 않고 신뢰도를 주는 기법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햇반처럼 1등 브랜드인 경우 약간 정체된 시장을 확대하고자 할 때 작위적이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서는 광고를 주로 쓴다고 설명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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