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알프스 마터호른-몽블랑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7시 12분


알피니스트들이 등정하기를 꿈꾸는 마터호른의 장엄한 자태. 마터호른의 기점이 되는 도시 체르마트는 스위스 최고의 청정구역이다. 사진제공 캠프
알피니스트들이 등정하기를 꿈꾸는 마터호른의 장엄한 자태. 마터호른의 기점이 되는 도시 체르마트는 스위스 최고의 청정구역이다. 사진제공 캠프

등반가, 특히 알프스의 여러 봉우리를 오르는 산악인들을 일컫는 ‘알피니스트’라는 호칭이 시작된 기원을 더듬다보면 몇몇 이름과 마주치게 된다. 영국 출신의 에드워드 윔퍼(1840∼1911)와 스위스인 자크 발마(1762∼1834). 윔퍼는 마터호른봉(4478m)을 첫 등반하고 산악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알프스 등반기’를 남겼다. 발마 역시 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을 최초 등정한 산악인이다.

●마터호른의 신비로운 빛, 체르마트

‘마터호른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당당하다. 결코 흔히 있는 산과는 다르다. 이에 견줄 만한 산이 알프스에는 없으며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윔퍼의 말이다. 히말라야가 알려지기 전의 이야기지만 그의 평은 지나치지 않다. 올해로 창립 90년을 맞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심벌도 마터호른이다. ‘영화인들이 운집한 거대한 산’을 꿈꾼 설립자의 의도에서 마터호른이 상징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체르마트에 있는 산악 박물관 내부.사진제공 캠프

마터호른은 독일어로 알프스 초원(Matte)에 솟은 뿔 같은 봉우리(Horn)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몬테체르비노, 프랑스 사람들은 몽세르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마터호른이다. 스위스쪽에서 바라보는 마터호른은 훼른리 능선을 사이에 두고 동벽과 북벽을 그대로 드러낸 가장 균형잡힌 모습을 보여준다. 19세기 알프스의 산간 마을 사람들에겐 이 봉우리가 신령스러운 대상으로만 인식되었지 사람이 오를 곳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에드워드 윔퍼는 1840년 런던에서 태어나 1911년 몽블랑이 바라보이는 샤모니 계곡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저술가, 탐험가, 등산가’라고 적혀 있다. 72년이라는 그의 생애는 알프스 등반의 황금기와 더불어 시작돼 근대 등산의 기초가 굳어질 때 끝났다. 원래 삽화가였던 윔퍼는 알프스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21세 때 처음 알프스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등산은 고사하고 산을 본 일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터호른에 매료돼 무려 8번이나 등반을 시도했고 그 힘든 과정에서 진정한 알피니스트로 변했다.

그는 발레 데 에크랑, 몽돌랑, 에귀 아르장티에, 에귀 베르트같은 봉우리들을 차례로 등반했고, 그 과정을 자신의 ‘알프스 등반기’에 자세하게 묘사했다.

누구든 알프스에 첫 걸음을 옮기는 알피니스트들은 그의 기록을 읽고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마터호른을 윔퍼와 함께 등정한다고 한다. 특히 그가 남긴 사진같은 세밀화와 서간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당시의 모습들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어서 알피니스트가 아니더라도 마터호른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마터호른으로 오르는 관문인 체르마트는 해발 1620m의 고산지대이다. 무공해 청정 구역으로 일반 자동차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이곳으로 여행하려면 자동차를 중간역인 티슈의 대형 주차장에 세우고 그곳에서부터 등산 철도로 들어가야 한다. 마을 내에선 전부 전기 자동차로 움직이고 스키어들과 여행자들의 짐을 부릴 수 있도록 자동차 뒤에는 별도의 짐칸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어른 걸음으로 1∼2시간이면 다 돌아볼 정도지만 이 마을이 중심이 돼서 펼쳐지는 알프스 관광의 범위는 실로 넓다. 알프스 어느 마을이든 케이블카로 거미줄같이 연결되어 쉽게 다가갈 수 있어 한여름엔 트레킹족, 겨울에는 스키어들로 붐빈다. 다양한 레포츠 프로그램들도 많아 관광청을 비롯, 알파인 센터에서 그 진행을 맡고 있다. 체르마트에서 특별히 들를 만한 장소로는 산악박물관과 힌터도르프를 꼽을 수 있다. 산악박물관에는 윔퍼의 마터호른 첫 등정 후에 일어난 사고 기록이나 각 봉우리의 축소 모형 등 알프스 등반의 귀중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알프스 마을들을 이동하는데는 등산열차가 가장 편리하다. 사진은 스키장들을 연결하는 샤모니지역의 등산열차.사진제공 프랑스 관광성

또 체르마트 인근에 서식하는 동물의 박제와 꽃 생물 지질에 관한 기록, 산악인들의 사진도 살펴볼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1865년 당시에 사용하던 등산 자일. 그냥 노끈일 뿐인 이 자일에 몸을 내맡기고 험난한 등반길에 올랐을 알피니스트들의 대담함이 놀라울 정도다.

힌터도르프는 체르마트가 속한 발레 지방의 독특한 오두막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 오두막들은 쥐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해 오두막을 지탱하는 나무받침 중간에 돌을 끼워넣은 스타일이다.

●스키 스포츠의 발원지,샤모니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이 있는 샤모니는 알피니즘이 처음 태동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한해에도 수만명의 등산가가 성지처럼 찾는 곳이지만 오래 전 샤모니의 주민들은 목축업이나 수정 채취로 근근이 생업을 이어갔고, 도시와는 거의 단절된 오지나 다름없었다. 산악인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 마을은 체르마트와는 달리 프랑스령이다. 처음 마을이 시작된 때는 11세기.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샤모니 주민들은 몽블랑 정상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등반하기를 두려워했다.

이 지역주민이었던 자크 발마는 산악가이드 겸 수정채집자였다. 함께 몽블랑을 등반한 미첼 가브리엘 파카드는 의사였다. 그들은 1786년 8월 7일 오후에 샤모니를 출발해 몽타뉴 드 라 코트 정상에서 야영하고 이튿날 오전 4시에 등반을 시작해 오후 6시23분에 마침내 정상에 섰다. 그들의 등반 전 과정은 샤모니에서 망원경으로 관찰되었고 바로 이 날이 알피니즘의 기원이 되었다.

이들의 몽블랑 등정 이후 조용하고 평화스럽던 샤모니는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몽블랑에 집요한 관심을 가졌던 또 다른 유명한 인물은 제네바 출신의 자연과학자인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이다. 1760년 샤모니의 빙하를 관찰하기 위해 혼자 도보로 출발했던 소쉬르는 곧 몽블랑에 과학적인 관심을 품고서 이 봉우리를 오르는 등반로를 찾는 사람에게 큰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한 채 26년이 흐르다가 발마가 비로소 그 일을 해낸 것이었다.

발마는 첫 등정 이후 여섯 번이나 몽블랑 정상에 섰는데, 한번은 소쉬르와 함께였다. 소쉬르는 그 등반에서 몽블랑의 표고를 재는 방법과 끓는 물의 온도가 고산지대에서는 다르다(80도)는 과학적인 결론을 얻어 후세에 남겼다.

오늘날 샤모니는 등산열차와 케이블카가 건설된 유명관광지로 변신했다. 특히 1924년 제 1회 동계 올림픽 개최지가 됨으로써 유럽 최고의 스키 리조트들이 들어섰고 이제는 산악인들보다 겨울을 즐기는 스키어들로 더 붐비는 곳이 되었다.

●다양한 코스, 최고수준 강습

눈이 탐스럽게 쌓인 샤모니의 교회 지붕. 멀리 알프스 영봉들이 보인다.사진제공 프랑스관광성

샤모니에는 스키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모두 만족할 만한 다양한 난이도를 지닌 스키장이 있다. 샤모니에 첫 스키장이 만들어진 것은 몽블랑 정상이 정복된 지 꼭 100년이 지난 후인 1886년. 프랑스 스키 발전의 주역인 미셀 파이요 박사가 주도했다. 이 스키장의 건설은 스포츠로서의 스키를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샤모니의 스키장들은 전체적으로 넓은 둔덕을 연상케한다. 슬로프의 폭이 넓고 경사의 완급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어린이는 물론 초보자에서 숙련된 마니아까지 골고루 코스를 골라가며 탈 수 있다. 또 눈이 두툼하게 쌓인 것도 안전하게 스키를 타는 데 도움이 된다. 샤모니에서는 몽블랑 스키 패스를 구입하는 게 편리하다. 샤모니 지역에 있는 모든 스키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각각의 스키장을 연결하는 버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샤모니에는 모두 13개의 스키장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이 ‘로냥 레 그랑 몽테’이다. 관광사무소 앞에서 출발하는 샤모니 버스를 타고 아르장티에르까지 간 후 로프웨이로 갈아탄다. 초급 또는 중급자에게 적당한 스키장은 ‘슈퍼샤모니’라고도 불리는 ‘플레제르’다. 샤모니 버스로 10분 정도 걸리며 ‘레 플라즈’에서 로프웨이로 바꿔 타야 한다. 샤모니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스키장은 ‘사라미용 콜 드 발므’이다. 샤모니버스로 르 투르까지 간 다음 로프웨이로 바꿔 타야 한다. 고급 스키어들에게 적당한 스키장으로는 샤모니 서쪽의 ‘브레방’을 추천할 수 있다.

초보자라면 경력 수십년을 자랑하는 전문 강사들이 포진한 ‘에콜 뒤 스키 프랑세’(프랑스 스키 학교)를 빼놓을 수 없다. 이 학교의 강사들은 세계적인 규모의 스키 대회 수상자들 일색이라 최고 수준의 강습을 받을 수 있다. 강사 대부분은 2, 3개국 언어를 구사한다. 일본여행사들은 이 곳에서 2, 3주 동안 스키를 배우는 어린이용 스키투어상품을 마련해놓고 있어 스키장 곳곳에서 동양계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년 내내 눈을 볼 수 없는 남유럽 사람들도 샤모니를 많이 찾는다.

스키가 끝난 후거나 타는 중간에 산 중턱에 자리잡은 샬레 스타일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샤모니 관광의 재미다. 샤모니의 명물이기도 한 몇몇 레스토랑은 권위있는 레스토랑 평가표인 ‘미슐랭 스타’에서 별점 두 개 이상을 받았을 정도로 고급이다. 모두 정상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서 들를 수 있다. 알프스의 훌륭한 전망을 앞에 두고 맛있는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스키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 맛. 샤모니가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로잔에서 체르마트까지는 기차로 약 2시간45분 정도 걸리고 취리히에선 약 4시간40분이 소요된다.

샤모니는 프랑스 파리에서 앙시까지 TGV로 이동한 뒤 다시 지방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밖에 매일 앙시, 제네바, 그르노블에서 버스가 왕복한다.

제네바 공항에서는 샤모니까지 하루 세 차례 버스가 다니며 소요시간은 약 1시간30분 정도.

2. 선택관광

체르마트에는 다양한 선택관광상품이 있다. 공중 케이블을 타고 해발 3820m까지 오르면 빙하와 마터호른을 바라볼 수 있다.스키를 타고 이탈리아 국경을 넘을 수도 있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 날씨가 좋으면 헬리콥터로 마터호른을내려다보는 유람비행도 가능한데 4인 이상일 때 출발하고 관광시간은 약 20분 정도.

3. 기타 정보

체르마트에 관한 정보는 체르마트 관광청(www.zermatt.ch)과 스위스 관광국(02-739-0034, www.myswitzerland.co.kr)에서, 샤모니에 관한 정보는 샤모니관광국(www.rhonealpes-tourisme.com)과 프랑스 관광성 한국사무소(02-776-9142, www.franceguide.or.kr)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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