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제 가신정치는 끝내자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23분


김대중(金大中) 정부 5년이 순탄하지 못했던 여러 원인 중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가신(家臣)정치, 측근정치다. 이른바 ‘동교동’으로 상징되는 비선 조직의 개입으로 국정 전반이 끝없이 흔들리고 삐걱거렸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차기 당권 포기선언은 이 같은 ‘동교동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는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정치 일선을 떠난 권노갑(權魯甲)씨에 이어 한 대표까지 당 지도부에서 물러나게 되면 오랫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동교동 세력의 영향력이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당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시대의 요청에 의한 변화이기도 하다.

되돌아보면 가신그룹을 중심으로 집행된 김 대통령의 비선정치가 이 땅에 가져온 적폐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들은 아무런 공식 직책도 없으면서 정치적 실력자로서 정부 및 공기업 인사나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그 결과 특정 지역 편중 등 인사 잡음이 끊이질 않았고 온갖 게이트에서 드러났듯 부정부패가 횡행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도 이들 특정 세력의 비호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이 같은 ‘제도 밖의 권력’이 정부나 당 위에 군림하면서 공조직은 바지저고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도 심각했다. 민주화투쟁을 하던 야당시절이라면 모른다. 집권 이후까지 사적(私的)체제에 의존함으로써 빚어진 해악은 결국 모두 김 대통령의 책임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DJ정부가 자초한 비극이 새 정부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국정 운영을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에 의존하는 잘못된 정치환경부터 바꾸지 않는 한 정치 쇄신은 한갓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노 당선자 주변에는 가신들이 없다. 그러나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은 계속 불어갈 것이다. 경계하고 또 경계함으로써 오늘날 동교동계의 퇴진과 같은 모습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노 당선자의 출범을 계기로 우리의 정치가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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