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亞 내셔널 어젠다위 제안]<3>인사정책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40분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인사는 ‘망사(亡事)’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은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국정을 그르쳤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정부에서는 전문성 없는 가신 그룹들이 국정 요직을 장악해 시행착오를 되풀이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에도 책임정치 차원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정책적 동지’들을 중요한 자리에 기용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정책과 이념을 같이하는 정책공동체나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가신, 패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 공기업 등의 임원 자리는 군 출신자들의 노후 보장 터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민주화 이후에는 대통령 주변의 측근 그룹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노조나 시민단체의 지탄을 받았다. 공기업의 주요 보직 인사가 전문성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의해 좌우되면서 공공부문의 효율성과 전문성은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역대 정권의 측근 챙기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없지는 않다. 공무원들이 무사안일하고, 복지부동을 일삼는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중과 국정운영 방향을 잘 아는 측근을 정부 요직에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의 경험을 보면 새로운 정권은 과거 정부의 문제점을 털어 내고 개혁을 추진하려 하지만 신분보장을 앞세운 공무원들은 과거의 틀을 고수하며 개혁에 저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생각 즉 ‘관료계급 국가론’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번 공무원은 영원한 공무원’이다. 심지어 퇴직 이후에도 공기업이나 공공단체의 간부로 옮겨 종신직을 보장받는 집단이 공무원이다. 이는 5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위기 상황에서 온 나라가 구조조정과 퇴출이라는 태풍을 맞을 때 공무원 사회에는 미풍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서 잘 나타난다.

순환보직과 무책임주의가 ‘한번 공무원은 영원한 공무원’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일정기간 시간만 때우면 좋은 자리로 이동하고 승진도 할 수 있어서 무책임 행정이 뿌리내리게 됐다. 러시안 룰렛 게임과 같이 아무리 어려운 현안이라도 공무원들은 자신의 재임 기간에 폭발하지만 않으면 유능한 공직자로 평가받았던 것이 그동안의 관료사회였다.

결국 우리에겐 대통령의 측근 챙기기와 함께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를 동시에 몰아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일반 관료 사회에는 철저한 근무평가와 개방직 확대 등을 통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 인사, 몇몇 측근들이 독식해 온 상위 정무직에는 지역이나 친소관계를 넘어 국가적인 인재를 고루 발탁하는 인사 탕평책이 필요하다. 관료사회에 유능한 경력직과 책임지는 정무직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제대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유능한 민주 정부가 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의지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어떤 대통령이 들어서든 상관없이 공정한 인사가 시스템의 차원에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장차관 등 정무직이나 공기업 임원의 경우 일정한 수준의 정책적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임명될 수 있도록 철저한 인사검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먼저 청와대 내부의 인사검증절차를 과학화하여 객관적인 검증과 인재 등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 전제 위에 특히 국무총리 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 검찰총장 국세청장은 물론 각 부처 장관까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국회의 인사청문절차도 더욱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혁돼야 할 것이다.

관료조직의 경우에는 복지부동을 척결하도록 철저한 근무평가가 시행되어야 한다. 공정한 근무평가를 토대로 보수와 승진이 결정되고 무능한 경우에는 퇴출시킬 수 있도록 인사제도를 유연화해야 한다.

그러면서 단순 순환보직이 아니라 전문성이 축적되도록 지속적인 경쟁과 재교육을 통해 행정조직이 학습조직으로 거듭나도록 해야만 21세기 새로운 사회의 중추조직으로서 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국내외 민간 전문가들을 적절하게 임용할 수 있는 개방직을 확대 실시해야 한다. 민간부문의 우수한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수혈하지 않으면 공무원 조직은 시대에 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픽 강동영기자


대표집필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 행정학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인사 사전검증 꼭 필요하다▼

공직자에 대한 인사 검증은 대통령의 측근 챙기기에 따른 폐단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정부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장관의 평균수명은 10.6개월(7월 현재), 김영삼(金泳三) 정부는 11.6개월, 노태우(盧泰愚)정부는 13.7개월, 전두환(全斗煥) 정부는 18.3개월이다.

장관이 그 부처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6개월은 걸린다는 평이고 보면 우리나라는 장관이 업무를 파악하자마자 해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비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8년 집권 기간에 장관의 평균수명이 3년9개월이었다. 그중 재닛 리노 법무부 장관 등 3명은 클린턴 대통령과 8년을 함께했다.

미국의 내각이 이렇게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은 국정 성패의 책임을 대통령 스스로가 지는 정치문화와도 관련이 있지만 철저한 사전 검증을 거쳐서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직자의 임명에 있어서 2단계의 검증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1단계는 백악관 인사국이 연방수사국(FBI)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행정부 내부의 검증 시스템이다. 이는 평균 10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방대한 작업이다.

2단계는 의회의 인사청문회다. 행정부처의 장차관은 물론 중앙정보국(CIA) FBI 국세청장 검찰총장 군장성 대사 그리고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판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요 직책이 인사청문회의 대상이다. 미국 의회는 매년 3만5000개 이상의 자리에 대해 인준청문회를 실시하고 있다. 의회는 철저한 인사검증을 위해 FBI의 조사자료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감사원 국세청 직원을 차출하거나 수사전문가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이 같은 인사 검증 절차를 의식해 공직자의 지명단계에서부터 의회와 상의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대법원 판사를 지명하기에 앞서 상원 법사위원들에게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실제로 그중 한 명을 지명했다.

이렇게 지명단계에서부터 대통령이 의회와 상의하고 또 2단계의 검증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전문성과 도덕성이 없는 인물을 단순히 자신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직에 임명하지 못한다. 또 깜짝 인사나 편중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

국제관계학



▼측근정치 역대 사례▼

대통령들에게는 몸을 던져 집권을 도운 측근 그룹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보와 인사에 개입해 국정난맥을 초래하거나 부패 비리에 연루돼 ‘주군’을 곤혹스럽게 만든 인물도 적지 않았다.

‘측근 가신정치 청산’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은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해 진씨에게서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올 5월 구속됐다. 40여년간 김 대통령 주변을 지켰으며 한때 ‘정권 2인자’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에게서 정보사항을 수시로 직접 보고 받았을 정도였다.

20년간 김 대통령의 집사역을 해 온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는 2월 말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이씨에게서 금융감독원 조사를 무마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권 전 고문과 이 전 이사가 막후의 실세였다면 한화갑(韓和甲) 민주당 대표와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당과 정부의 전면에서 김 대통령의 심중(心中)을 관철해 온 측근들이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많은 문제를 노정했다. 20여년간 YS의 집사 노릇을 했던 홍인길(洪仁吉) 전 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은 YS가 집권중이던 97년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 총회장에게서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96년에는 역시 상도동 집사 출신인 장학로(張學魯) 당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이권 청탁 등의 대가로 14개 기업에서 6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각종 인사와 민원에 개입했다가 검은돈의 사슬에 휘말린 케이스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분신이라는 장세동(張世東) 전 안기부장이 89년 일해재단 영빈관 신축 등과 관련한 ‘5공 비리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5, 6공화국 시절 대통령 측근들도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다가 임기 후 수난을 당한 사례가 많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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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2]대북정책
- [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1]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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