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여의도 광장은 군사정권이 거칠게 만든 관제동원의 장(場)이었다. 87년 넥타이부대가 민주화를 외쳤던 시청앞 광장도 축제 아닌 피맺힌 절규의 자리나 다름없었다. 역사적으로 광화문 네거리는 통치권력의 으뜸 광장이었다. 조선 태조가 경복궁을 짓고 광화문을 세운 이래 의정부와 이조 호조 등 6조가 양옆에 들어선 6조거리에선 왕이 풍악을 울리며 어가행렬을 벌였고, 선비들은 이곳에 엎드려 상소를 올렸다. 궁궐수비대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려는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동아일보사 건물이 광화문 네거리에 지어진 것도 일제 총독부를 감시해야 한다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의지 때문이었다.
▷이처럼 광화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압적 권세와 자동차가 16차로를 쌩쌩 달리며 시민들을 짓눌러 왔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엄숙한 정부중앙청사와 세종문화회관, 또 한쪽엔 딱히 문화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문화관광부와 요즘 생경하게 보이는 미국대사관이 버티고 있다. 종로에서 충정로로 이어지는 길이 민중과 젊음의 길이라면, 광화문에서 시청앞으로 뻗은 길은 시민들이 마음놓고 걷기조차 힘든 권력과 외세의 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품으로 돌아온 광화문 네거리는 권력과 민중의 화합을 상징한다. 광화문 광장을 터질 듯이 메운 활력과 생기가 이제 진정한 힘은 시민에게 있음을 위풍당당하게 입증해준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서 홀로 앉아 세계와 교신할 수 있다 해도 사람들은 서로 얼굴 맞대는 만남을 좋아한다. 제아무리 선명한 고화질TV가 집에 있어도 광화문의 대형 전광판으로 다같이 보는 신명을 따르지 못한다.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한데 어우러지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 바로 시민의 광장으로 활짝 열린 광화문이다. 2003년의 광화문에선 모두가 함께 더 기쁘고, 더 행복하고, 더 자랑스러운 축제가 더 많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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