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서양 고전학, 고대 근동학, 고대 그리스 역사, 고문자학, 고대 유적 답사. 느슨하게 연관돼 있는 다양한 주제들이 트로이 전쟁이라는 허브(Hub)를 중심으로, 한 권의 책에서 완결성을 갖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한 우물만 파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마이클 우드가 저자다.
학자, 방송제작자 및 진행자, 저술가 등을 겸업 중인 그가 연출 진행한 다큐멘터리는 역사물을 중심으로 50여편에 달한다. BBC 출판부가 그 전체를 풍부한 사진을 담은 책으로 펴내고 있으며, 현지 답사에 바탕을 둔 그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고 박자가 빠르다는 점에서 책상물림들의 글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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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은 호메로스가 전하듯이,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야반도주했기 때문에 일어났을까? 신화적 낭만을 빼고 냉엄한 현실만 남겨보자.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쇠퇴를 틈타 그리스인들은 에게해의 패권을 장악하려했다.
그러나 흑해 연안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트로이를 비롯한 이오니아 도시국가들이 큰 걸림돌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전쟁으로 걸림돌을 제거하려 했다.
한편 트로이라고 하면 그 유적을 처음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과 함께, 유명한 목마 이야기부터 떠올리게 된다. 슐리만은 자신이 발굴에 나선 계기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들은 전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슐리만이 발굴 과정을 책으로 펴내면서 꾸며낸 거짓이다. 또한 슐리만이 발굴한 유적은 실제로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 기원전 13세기의 그 트로이는 아니다. 같은 장소에 여러 시기의 유적이 층층이 쌓인 곳이 트로이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목마 이야기도 그리스인들이 트로이가 지진으로 파괴된 뒤에 트로이를 약탈했을 가능성과 상관 있다. 지진의 신이기도 한 포세이돈은 말의 형상으로 숭배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전문적인 학자라면 거부감을 보일 것’이라고 저자 스스로 인정하는 추측도 적지 않다.
예컨대 저자는 트로이 전쟁에 관하여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잘못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나름의 관점을 밝힌다. 미케네 대군주가 이끄는 아카이아 그리스 연합이 소아시아 서북부를 공략하고 도시를 약탈한 것이 트로이 전쟁의 본질이며, 당시의 미케네가 동맹 서약이나 조공 관계에 바탕을 둔 제국적인 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 여러 나라 위에 군림하던 아가멤논의 제국 미케네의 팽창이 트로이의 비극을 낳은 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달리 질문을 자주 던진다. ‘그게 가능할까, 과연 그랬을까, 어떤 이유일까, 증거가 실제로 있을까.’ 저자는 그런 질문을 통해 고대 문명 탐사의 결과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탐사의 과정에 독자들이 참여하게 만든다. 독자로서는 쉽지 않은 주제에 쉽게 빠져드는 독서 체험이 가능하다.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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