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노근리다리'

  • 입력 2003년 1월 3일 18시 06분


◇노근리 다리/최상훈, 찰스 핸리, 미사 멘도자 지음/남원준 옮김/412쪽/1만5000원/잉걸

AP통신은 1999년 9월29일 노근리 양민학살 기사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사건 내용은 6·25전쟁 초기인 1950년 7월26일 미군의 인솔 하에 피란하던 충북 영동군 주민들이 노근리에서 미군 항공기의 폭격을 받았고, 7월 26∼29일 인근 쌍굴다리 등에서 미군에 의해 200여명이 살상됐다는 것.

이 책은 노근리 사건 보도로 취재탐사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3명의 AP기자가 사건 보도를 전후한 3년여에 걸쳐 파헤친 자료를 바탕으로 노근리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노근리 사건을 취재하면서 AP기자들은 엄청난 양의 비밀해제 문서를 추적했다. 그러던 중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유독 노근리 사건이 벌어진 1950년 7월의 미 제7기병연대 통신일지만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다. 왜 그 문서만 사라져버렸을까? 그 일지는 노근리 피란민 처리와 관련해 명령계통상의 현장 통신내용과 현장 상황이 기록돼 있을 개연성이 높은 문서다.

AP기자들은 2002년 7월 또 다른 개가를 올린다. 현재 미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맥 힐리어드로부터 ‘제7기병연대 통신일지는 분명히 존재했고, 그 일지에 7월말 대규모 피란민 공격내용이 기록돼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당시 제7기병연대 본부 기록병이었던 힐리어드씨에 따르면 노근리 사건 무렵 제7연대 본부로 보고내용 하나가 올라왔다. 그건 ‘약 300명의 민간인을 공격했다’는 내용이었고 사라진 제7기병연대 통신일지에 힐리어드씨 자신이 직접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증언은 원저인 ‘The Bridge at No Gun Ri’(2001년)에는 들어있지 않은 내용으로 이번 한글 번역판을 한창 준비하는 동안 나왔다. 이 책에는 그 증언의 전체내용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AP보도 후 노근리 사건은 베트남에서 벌어진 밀라이 사건과 함께 미군이 저지른 대표적 학살사건으로 규정됐다. 밀라이 사건은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베트남의 쾅가이 지역 밀라이 마을에서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한 양민 500여명을 미군이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디스패체 뉴스서비스’의 시모어 허시 기자의 폭로기사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미군도 어쩔 수 없이 재판을 통해 책임자를 단죄하는 데 이른다. 그러나 단 한명 윌리엄 콜리 중위만이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그나마 3년 후 면죄부를 받았다.

2001년 1월12일 한미양국은 노근리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를 각각 펴냈다.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깊은 유감(deep regret)’을 표명했으나 위법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 국방성 조사보고서는 미 제5공군 제35전폭기대대가 1950년 7월26, 27일에 노근리 지역에서 최소한 3차례의 공중공격을 가했다는 보고와 전직 조종사들이 피란민 행렬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작전에 임했다는 증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근리 사건의 생존자인 정은용씨의 아들 구도씨가 최근 펴낸 ‘노근리는 살아있다―50년간 미국과 당당히 맞선 이야기’(백산서당)와 함께 읽으면 전모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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