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커피의 역사',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 입력 2003년 1월 3일 18시 24분


◇커피의 역사

하인리히 E 야콥 지음/박은영 옮김/480쪽/1만8000원/우물이 있는 집

◇도도한 알코올, 와인의 역사

로드 필립스 지음/이은선 옮김/515쪽/1만6000원/시공사

잠을 불러오는 와인과 잠을 깨게 하는 커피. 반대 기능을 가진 와인과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다. 둘은 각기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을 상징하는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인류의 역사를 이끌었던 쌍두마차였다.

많은 이들이 남미에서 커피가 유래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커피의 고향은 아랍이다. 와인이 유대·기독교의 유럽문화에 기반을 둔 음료라면 커피는 이슬람 세계의 특징적 음료.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 어디에서나 와인을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아랍이 정복한 곳에서는 예외 없이 커피가 발견된다. 그래서 커피는 ‘이슬람의 와인’이라고도 불렸다.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은 신화의 주요 소재이자특권층의 사치품이었다 . 귀도 레니의 ‘와인을 마시는 바쿠스 ’(623)(왼쪽사진)./이슬람 문명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호메트에게 ‘쓴 맛의 비약 ’인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고 전해진다 .사진제공 우물이 있는 집

와인은 기독교적 세계를 지배했으나 커피를 앞세운 마호메트가 지나간 곳마다 그 뿌리가 뽑혀져 나갔다. 몇 세기에 걸쳐 와인 주조업자와 커피 제조업자 사이의 싸움은 치열했다. 커피와 와인의 전쟁과 공존은 곧 문명간의 대결과 통합의 과정이기도 했다.

아랍의 이슬람인들에게 커피는 종교였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졸음의 고통을 이기려 애쓸 때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 준 음료가 커피였다.

포도나무는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식물이자 조물주가 인간에게 약속한 선물의 상징이었다. 예수는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이다”라고 말했듯이 와인은 거룩한 희생의 상징이기도 했다.

‘커피의 역사’와 ‘…와인의 역사’는 커피와 와인이라는 주제를 따라가면서 그에 얽힌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의미와 배경까지 총체적으로 탐색하는 책이다.

‘미시사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커피의 역사’의 첫 장은 커피 탄생의 전설로부터 시작한다. 예멘의 쉬오뎃 사원의 양치기들은 염소들이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보이자 당황한다.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불면증세를 보였기 때문. 문제 해결을 위해 염소들이 따먹은 열매를 먹었던 사원의 수도승 이맘은 커피를 맛본 최초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에티오피아에서 아랍으로 건너온 관목에서 발견된 커피는 문명세계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저자는 헬레니즘을 몰락시킨 커피의 이야기를 비롯해 정치와 예술, 그리고 혁명에 미친 커피의 영향 등을 짚었다. 역사학자 미술레는 18세기 지적인 삶의 대폭발이 일어난 직접적 원인으로 커피를 지목했다. 두뇌의 능력과 활동을 크게 증대시켰다는 의미다. 또 커피는 근대산업사회의 동력으로 활용됐다. 커피의 발견 이래 인간의 노동시간은 이론상 12시간에서 24시간으로 확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와인의 역사’에 따르면 실제적으로 와인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70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와인의 탄생부터 암흑기, 부활, 혁명, 산업화를 다룬 이 책에서 소개된 일화 한 가지. 99년 10월 이란 대통령이 프랑스를 국빈 방문하려던 때의 일이다. 이란 대통령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서 와인을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와인이 나오는 자리에 참석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측은 와인이 없는 만찬은 상상할 수 없다고 반박해 결국 만찬은 취소됐다. 국빈 방문에는 이에 상응하는 만찬이 따라야 한다는 외교 관례로 인해 대통령의 방문은 ‘국빈 방문’에서 ‘공식 방문’으로 격이 낮아졌다.

두 권의 책은 함께 읽을 때 더 흥미롭다. 굳이 무게를 달자면, 보다 풍요한 문화적 상징과 유려한 문장이 담긴 ‘커피의 역사’쪽으로 저울이 조금 기울 것 같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