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노 당선자의 20대 핵심 공약에는 ‘재벌 개혁’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앞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당선 후 기업의 기(氣)를 살리기 위한 규제 완화에 관한 내용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 ‘재벌 개혁’은 △상속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시행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금융계열 분리청구제 추진 △구조조정본부 폐지 검토 등 구체적 방안과 시행시기까지 제시됐다.
노 당선자의 브레인들이 내놓은 각종 정책 방향은 대기업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재벌의 폐해’를 강조하는 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대기업 가운데에도 삼성을 주로 겨냥하는 점도 한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가 그렇게 보고 있다.
경영투명성 제고와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개혁역량의 포화(砲火)를 쏟아 부어야 할 만큼 삼성이 ‘심하게 곪은 조직’인지는 의문이다.
삼성그룹 24개 계열사는 지난해 137조원의 매출을 올려 15조원의 세전(稅前)이익을 냈다. 법인세만도 4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은 한국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했고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간판 기업’이다.
자신있게 말하지만 기자는 삼성 등 대기업을 변호할 이유도, 생각도 없다. 다만 온갖 권력형 부패로 만신창이가 된 민주당 정권이나 ‘낙하산 인사’와 비효율의 상징인 공기업보다는 대기업의 국민경제 기여도가 훨씬 높다고 믿는다.
노 당선자와 경제 브레인들에게 묻고 싶다. 기업에 ‘채찍’만 가할 만큼 지금 한국의 경제상황에 여유가 있다고 보는가. 주요 그룹 지배구조만 바꾸면 한국이 선진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낀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제조업의 ‘해외로의 탈출’ 행렬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가. 노 당선자측은 ‘개혁 구호’에 도취하기 전에 지금 한국경제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국민이 늘어나는 현실을 살펴야 한다.
천광암 경제부기자 ia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