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안보 발언´ 입 무거워야

  • 입력 2003년 1월 6일 18시 24분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對) 4강 외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행한 미국 관련 발언들이 한미 공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너무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가 소위 ‘맞춤형 봉쇄정책’을 거론한 직후 노 당선자는 “미국이 발표하고 한국 정부가 수용하는 식은 진정한 한미 공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원칙론의 입장에서 볼 때 노 당선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언급이 “미국이 이른바 맞춤형 봉쇄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한국에 대해 수용하도록 요구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핵…주한미군…민감한 사안▼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이 그러한 정책을 공식 발표한 적이 없고 한국에 대해 수용하도록 요구한 적도 없다. 따라서 노 당선자의 발언은 신문기사에 근거해 다소 성급하게 새 정부의 대미 정책노선(특히 한미 공조의 개념 규정과 방향 제시)을 천명한 셈이 된다. 이는 북한 핵 포기를 위해 긴밀한 한미 공조 체제를 가동해 대북 협상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할 시점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 당선자는 “미국의 어떠한 조치도 한국의 의견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법에 관한 ‘당선자의 의견’(북-미 상호 양보안)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해 줄지는 미지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미국식 일방주의는 배척하면서 ‘노무현식 일방주의’의 수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여겨 불쾌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는 또 “미국의 대북 조치가 성공하든 못하든 미국 국민은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는 미국 본토의 방어, 범세계적 핵 비확산 체제의 유지, 9·11테러 이후의 반테러 전쟁 수행 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미국도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우선적 관심과 이해관계의 수준이 우리와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들의 정책과 입장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노 당선자는 계룡대를 방문해 군(軍) 수뇌부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있는지 묻기도 했다. 물론 예비 국군 통수권자로서 당연히 질문할 수 있는 사항이다. 다만 작금의 복잡미묘한 한반도 상황에 비추어 그때 그곳에서 그런 말을 꼭 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군이 통일 후에도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 노 당선자의 발언은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미국을 ‘믿을 수 있는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실 오늘의 경제발전은 한미 동맹관계를 발판으로 이룩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 주한미군의 철수가 가져올 파급효과를 생각할 때 단시일 내에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盧당선자, 국론분열 막아야▼

이상의 점을 고려해 앞으로 5년간 국가의 운명을 책임질 노 당선자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대통령은 나라 안팎에서 정상외교를 수행하는 최일선의 외교관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외교 안보문제에 관한 한 가급적 말을 아껴야 한다. 둘째,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해결 없이는 진정한 남북 평화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북한 핵 포기를 최우선의 목표로 설정해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 한미 동맹관계를 21세기에 맞게 보완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평화통일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반미 감정을 용미(用美)의 관점에서 슬기롭게 극복해 더 이상의 국론분열을 막아줄 것을 기대한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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