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론을 걱정하는 주요 배경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국내외 정치경제적 불안요인의 상존, 둘째는 경제성장의 주체인 재벌의 경영위축 가능성, 셋째는 재벌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 부재, 넷째는 재벌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유일한 경제주체라는 점 등이다.
▼흑백논리로 판단은 위험▼
그러나 재벌개혁이란 주제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현실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을 찾으려는 노력을 등한시하고 경제적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에 따라 흑백논리적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거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재벌체제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황인지, 재벌체제의 누적된 부작용 자체가 문제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판단은 오로지 경제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재벌 개혁에 있어서 외국투자자의 반응을 반대논리로 이용하거나, 이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경제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재벌개혁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투명성이 제고된다면 외국투자자들도 환영할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에도 외국투자자들의 반응이 소극적이라면, 이는 재벌개혁 때문이 아니라 한국 경제 또는 기업의 펀더멘털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재벌개혁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오류는 재벌의 문제가 재벌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정부의 인식이다. 재벌이 과거 선단(船團)식 경영, 내부자 거래 등을 통해 오늘에 이르게 된 데는 경제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에 기인한 바 크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은 사업위험도를 높이고, 이러한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경영자 입장에서 핵심사업에 주력하는 것보다 다양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갖는 전략이 오히려 타당했던 것이다.
개혁 실행의 전제는 무엇보다 정책 방향이 예측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재벌체제는 경영주체가 복수 계열 기업군을 통제하면서도, 주주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기업의 윤리성이 떨어지거나 법적인 통제장치가 미비할 경우, 내부자 거래를 통한 부(富)의 은닉과 누출, 또는 경영주체의 자의적 결정에 의한 기업가치 극대화 기회의 상실 등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투명성 확보와 주주 대표성의 제고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골격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도 아니고 통치권자의 호불호(好不好)의 문제도 결코 아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꽃인 주식회사에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이런 변화라면 국내외 투자자들은 크게 환영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개혁이 경제적 합리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핵심인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제도와 관행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재벌들의 소유구조나 경영관행의 변화도 유발될 수 있다.
▼투자 활성화 필수적▼
최근 대외 환경요소 중 가장 중요한 이슈가 중국의 세계공장화이며 이에 따른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의 성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를 위해 국내외 투자자들의 활발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의 재벌개혁이라면 외국투자자들에게 한국의 매력은 높아질 것이다.
정태수 ADL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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