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에서도 통치행위가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하는데 그게 왜 상식인가.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부당편법대출 의혹까지 통치행위로 인정하는가. 무릇 통치행위라 함은 개헌발의 은사행위 외교행위 등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일컫는 것이고, 통치행위 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은 사법부의 몫임을 밝혀둔다.
문 실장이 “김대중 대통령이 한 것은 아니라고 믿지만”이라고 전제한 것도 논리가 엉켜 있다. 그러면 대통령 말고 누가 통치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는 사안에 대해 곧 새 정부의 실력자가 될 사람이 어떻게 무책임하게 가정법으로 언급할 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집권자나 청와대는 알고 있을 것이다”는 그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북지원 의혹의 핵심인물인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다 대선 직후 귀국해 통일부장관을 만나고 북한에 간 것 역시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당장 진상을 밝혀야 한다. 알고도 밝히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문 실장이 “그걸 파헤친다고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한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 진실을 안 뒤에야 국익을 논할 수 있는데, 국익을 내세워 진실을 묻으려는 발상 자체가 권위주의적이다.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도 그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다.
한가지 “현 정부가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당연히 새 정부에 이월된다. 진상규명에 시한은 있을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