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미켈란젤로 1·2/로제마리 슈더 지음 전영애 이재원 홍성광 옮김/1권 627쪽 2권 580쪽 각권 1만8000원 한길아트
그의 아버지와 숙부에게 예술가란 곧 가문의 수치였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의 주먹에 코가 주저앉아 ‘못난이’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교회는 구두 맞추듯 예술품을 주문했다.
다비드상과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그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94)의 영화만을 좇았다면 이 소설의 빛은 희미해졌을지 모른다. 작가 슈더가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인간적인’ 미켈란젤로는 오늘의 독자,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또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혈육의 빈한함도, 시대의 우둔과 불합리도 그를 회의와 분노, 자괴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았다. 대신 진실과 아름다움, 애통한 자들의 고통과 자부심이 그의 예술에는 숭고하게 깃들어 있다.
이야기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둘러싼 로마의 호기심과 수군거림으로 시작된다.
카르멜 교단 성당의 예배실에서 그림을 배운 미켈란젤로는 그림 속 인물들에서 배어나는 감정을 읽어내는 눈을 가졌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브의 좁은 어깨에서 부끄러움을, 구부린 팔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화가 마사초의 결단을 이어받는다.
내려앉은 코 때문에 평생 독신으로 살 정도로 외골수. 똑같이 주먹을 받아치기보다 ‘일’로 치욕을 되갚겠다는 그의 결심은, 외모에 대한 자박(自縛)을 풀고 생명력있는 인체미를 표출해 낸 작품을 만들어낸다.
미켈란젤로는 부유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부양해야 했다. 환전상인 프란체스코 숙부에게 의식주를 의탁한 그의 가족들은 숙부의 말을 법처럼 따르며 순종했다. 빈한한 혈육은 미켈란젤로의 가슴 한 켠을 늘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교황의 말한마디에 따라 하늘 또는 땅, 예술가가 머물 곳이 정해지곤 했다. 심지어 교황의 가마꾼이 호평하는 그림의 소재를 차용, 시나 경구를 쓰기도 했으니.
미켈란젤로는 지고한 권력보다는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교황과 교회에 대한 찬사 일색인 예술은 공허하고 값쌀 뿐이었다. 달콤한 제안, 빛나는 황금이 고개를 가로젓는 양심을 이겨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어야 했다. 그는 ‘혁명적 이단아’였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비에 놓을 ‘노예상’을 만들었다, 대담하게도. 표면적으로 교황과 교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의지를 작품 속에 심는 묘(妙)를 살리기도 한다. ‘의지를 관철시킬 만큼 강한 사람, 단단한 손으로 정의를 구현할 사람’, 신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모세에게 새겨 넣었다. ‘최후의 심판’에는 구원받아 하늘을 오르는 두 명의 흑인이 포함돼 있다. 이 흑인 노예들을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은 바로 날개없는 천사들!
60년대초에 처음 발표된 이 소설은 1991년 ‘결박당한 노예’와 ‘부서진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오늘날 이 작품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줄리아노 다 상갈로 등 르네상스 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예술가의 면면도 풍요롭게 다뤄지고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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