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저작권은 저자의 사후에 50년 동안 보호된다. 사후 50년이라는 기간도 길다는 느낌을 주는데 미국에서는 1998년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자의 사후 70∼95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됐고 이번에 대법원에서 7 대 2로 합헌 판결을 받아냈다. 월트디즈니의 만화 ‘미키마우스’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예술작품이 이 혜택을 받게 됐다. 미국 의회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지난 40년 동안 11차례 늘려주었다. 1970년 저작권법 최초 시행 때만 해도 사후 14년에 추가로 14년을 연장할 수 있었을 뿐이다.
▷저작권(Copyright) 보호가 학문과 예술의 진보를 가로막는다며 저작권 공유 운동(Copyleft)을 하는 사람들은 “20년 후쯤이면 의회가 저작권 보호 기간을 더 늘려줄 것”이라고 비판한다. 저작권을 무한정 늘려주는 입법 로비의 배후에는 디즈니 같은 미디어기업, 영화협회, 음반회사 그리고 사망한 저작자의 유족들이 있다. 소수의견을 낸 스티븐 브레이어 판사는 20년 동안 연장된 저작권료는 책 영화 CD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항공사가 192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를 객실에서 상영하기 위해 값비싼 저작권료를 내게 되면 비행기표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 저작권 연장의 혜택은 창작의 산고를 치른 저작자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손자에게 돌아가거나 디즈니 같은 거대 기업을 더 살찌게 한다. 미국의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뀌어 전 세계에 파급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저작권 보호 기간을 저자의 사후 70년으로 늘리자는 논의가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할아버지의 저작물을 베껴본 일도 없는 손자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예술 애호가들의 주머니를 무한정 터는 일이 과연 사리에 합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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