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세종대왕도 한글 창제 등 문화적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던 영조와 정조 때도 다른 어떤 업적보다 문예부흥을 일군 시기로 후대의 평가를 받는다.
▼선진국의 비결은 문화 ▼
광복 이후 우리 대통령들은 문화 분야에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군사정권 시절은 태생적으로 ‘문화의 암흑기’였기에 논외로 치자. 김영삼 대통령 시절은 ‘역사 바로세우기’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것말고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총독부 건물 해체를 문화의 발전으로 볼 것이냐, 퇴보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초기부터 ‘문화대통령’을 표방했다. 정부예산 가운데 문화예산이 처음으로 1%를 넘기는 등 변화도 있었지만 영화를 제외한 문화 전반에 여전히 불황과 침체가 이어졌다. 더구나 ‘인문학 위기’가 학계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으며 통치 후반기에는 이것이 ‘기초학문의 위기’로까지 확대됐기에 정권을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얼마나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기준은 애매하다. 그도 그럴 것이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오일달러로 소득이 높은 중동 산유국이 선진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군사력이 강하다고 해서 선진국이 될 수도 없다. 어렴풋하게 나마 선진국의 정의를 내린다면 국가경쟁력이 각 분야에서 고르게 뛰어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그런 국가가 선진국 범주에 들 수 있다.
하지만 국가경쟁력이란 단어를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는 공통적인 게 있다. 바로 ‘문화의 힘’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들에 예외 없이 나타나는 것이 문화적인 ‘두께’와 ‘넓이’인 것이다.
문화라는 말 자체가 막연하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문학 예술 지식 이념 규범 등 일반적인 문화활동이라고 한다면 우리와 선진국의 격차는 너무도 크다. 우리가 종종 지식인 ‘집단’이라는 말을 쓰지만 지식인층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넓고 두껍게 퍼져 있는지, 그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한지는 회의적이다. 기 소르망이 지적했듯이 일종의 지적 테크닉에 속하는 토론 문화는 서로 ‘자기 얘기’만 하고 끝내는 원시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문화예술의 뿌리를 이루는 순수예술은 전문인 수가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빈약하고 소비층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 문화의 각 분야를 이런 식으로 따져 나가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지식과 문화의 역량은 사회 갈등이 빚어질 때 선진국과 큰 차이를 드러낸다.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세대갈등 문제에 대해 아직껏 서로 으르렁거리고만 있으나 선진국에서는 갈등 상황을 용케도 쉽게 극복하고 오히려 이를 사회 발전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은 더없이 부러워 보인다. 이처럼 갈등의 완충 작용을 해 주고 외부 충격에 가벼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게 다름 아닌 문화의 위력이다. 이런 능력을 배양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절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
▼노무현 당선자의 비전 ▼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문화 분야가 중요하다고 말은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소홀히 한 ‘업보’다. 누구보다 역대 대통령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이다. 다음 달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는 어느 정도 문화에 공을 들이고 있을까. 노 당선자는 문화예술인들을 만나기를 즐기고 영화관 미술관에도 자주 다녔다고 하는데 정작 문화 공약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역사 속의 통치자들이 늘 역사를 생각하면서 문화를 존중했듯이 노 당선자가 국민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문화의 ‘큰 그림’을 보고 싶다.
홍찬식기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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