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보물추적자

  • 입력 2003년 1월 17일 18시 12분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멸망한 도시를 찾아 ‘돌아올 수 없는 황무지’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제공 푸른숲
유럽의 고고학자들이 멸망한 도시를 찾아 ‘돌아올 수 없는 황무지’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제공 푸른숲

◆보물추적자

볼프강 에베르트 엮음/정초일 옮김/416쪽/1만5000원/푸른숲

‘돌아올 수 없는 황무지’라고 불렸던 타클라마칸 사막은 중국의 북동쪽에 있다. 옛 중국의 수도 장안, 오늘날의 시안(西安)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대상들에게 사막은 실크로드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간이었다.

먼 옛날 낙타를 탄 대상들의 행렬이 이어지던 실크로드에선 1904년부터 1910년까지 보물을 찾고자 하는 ‘국제 경주’가 절정을 이루었다. 서구 열강은 사막에 숨겨진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한발 앞서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그중 실크로드 최대의 보물로 손꼽히는 둔황 문서고의 무지막지한 약탈 사례는 충격적이다. 영국의 고고학자인 마크 오렐 스타인은 정부의 위임을 받아 1907년 둔황에 도착한다. 실크로드 탐사를 하면서 둔황의 천불동(千佛洞)을 발견한다. 둔황은 불교를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하려는 승려들에게 성지와 같았다. 366년 승려 러쭌이 사암 암벽에 1600m 길이의 동굴을 뚫기 시작했다. 그 이후 천장화나 벽화가 그려진 다른 작은 석굴들도 생겼다.

스타인은 칸징, 지금의 17번 석굴에 비밀의 문서고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낸다. 이는 15년 후 깜박이는 촛불 아래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묘실을 들여다본 것에 비견할 만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 문서고에는 줄잡아 4만5000종의 불교문서, 직물과 그림들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세기부터 11세기까지 제작된 이들 자료에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종교 등에 관한 소중한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스타인은 이 중 불교 미술품과 고문서 1만2000여점을 반출했다. 고문서들을 손에 넣기 위해 그는 현장의 제자를 자처하면서 이곳을 책임진 중국인 승려왕 위엔루를 현혹시켰다. 비밀스러운 거래에서 위엔루에게 지불된 영국 정부의 예산은 130파운드에 불과했다. 귀국한 스타인에겐 훈장과 귀족 작위, 명예박사 학위가 기다렸고, 영웅으로 예찬되었다. 뒤를 이어 프랑스, 일본인들이 나타나 각자 몫을 챙겼다.

서구 열강에 유린당한 아시아의 비극적 근대사는 어찌 그렇게 닮은꼴인지. 20세기 초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에서 벌어진 일부 유럽 고고학자들의 약탈과 파괴사건은 우리에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중요 문화재, 문화적 전통의 중요한 자산을 도둑맞았던 체험이 있기에 더욱 생생하고 뼈아프게 읽힌다.

유럽인의 문화재 약탈에 대해 나름대로 진솔하게 접근하려 노력한 점이 이 책의 미덕. 이 책에선 1895년 한 프랑스 학자가 했던 말을 상기시킨다.

“…한 세대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한층 더 빠른 속도로 잊혀진다. 하지만 그런 약탈 행위는 단지 한 세대에 대한 모독으로 그치지 않는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행위는 한 민족 전체의 역사적 감성에 가해진 상처와 같다.”

‘보물추적자’는 독일 공영방송 ZDF TV의 4부작 역사 다큐멘터리 ‘사라진 보물을 추적하는 사람들’을 묶어낸 논픽션이다. 사라졌거나 숨어있는 보물, 여기에 얽힌 수수께끼를 추적하는 고고학자, 예술품 약탈자, 보물사냥꾼들의 여정과 비화를 들려준다.

책에는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네 편의 글이 실려 있다. 실크로드 편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굴된 황금 유물 이야기는 좀 무겁지만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지식을 넓혀 준다. 유럽 왕가의 다이아몬드였던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인생유전, 나치 독일의 패망을 전후해 사라진 금괴들에 관한 추적은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가 될 법한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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