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반대하는 장관'

  • 입력 2003년 1월 21일 18시 48분


“나는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19일 ‘미시간 논쟁’에 대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견해에 반대함을 분명히 했다.

‘미시간 논쟁’은 명문 미시간대에 지원한 백인 학생 3명이 소수계 출신 입학 우대제도로 인해 탈락하면서 불붙고 있는 논쟁. 이들은 “소수계 우대 제도는 위헌”이라며 소송을 냈는데 사안 자체가 워낙 인화력(引火力)이 강해 부시 대통령마저 숙의를 거듭한 끝에 견해를 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민감한 현안에 대해, 그것도 대통령이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직접 견해를 밝힌 사안에 대해 핵심 각료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은 언로(言路)가 열려 있다는 미국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다.

이에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담당 보좌관도 “대학 선발 과정에서 인종이 한 요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 부시 대통령과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두 사람 다 흑인이다. 때문에 “피는 이념보다 진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부시 대통령에 대한 소수 민족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해 파월 장관이 먼저 나서서 반대의 뜻을 밝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장관이 당당하게 대통령의 의견에 이견을 제기하는 장면이 주는 상징적 효과다. 두 사람의 반대 발언은 정부 안에도 ‘좌우 두 날개’가 살아있음을 생생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 내의 좌우파는 건건이 대립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이라크 사태와 북한핵 문제에 대해서도 파월 장관을 비롯한 비둘기파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매파의 목소리는 명확히 다르다.

물론 양쪽 다 본질적으론 보수이지만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자유롭게 개진된다. 이를 통해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최종 결정이 언제나 매파와 비둘기파의 의견을 모두 수렴한 끝에 이뤄졌음을 과시하게 된다.

파월 장관의 반대 발언을 보면서 새 정부의 의사 결정도 이런 식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에서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논쟁이 전제될 때 비로소 합리적이고 건강한 정책결정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홍기자 국제부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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