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화제]양궁의 ‘신새벽’ 열다

  • 입력 2003년 1월 23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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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이 23일 새벽 한강 둔치를 행군하는 야간 극기훈련에 나서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김상수기자.   원대연기자
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이 23일 새벽 한강 둔치를 행군하는 야간 극기훈련에 나서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김상수기자.  원대연기자

23일 새벽 서울 천호대교 밑 한강둔치.

두 대의 승합차에 나눠 탄 양궁 국가대표 남녀선수 16명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터운 점퍼에 장갑과 마스크까지…. 다들 추운 날씨에 대비해 단단히 준비를 했다. 야간 극기훈련에 나선 선수들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남들이 모두 잠든 추운 새벽에 홀로 4시간 가량을 말없이 걸어야 된다는 사실이 달가울리는 없었다.

이번 훈련은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올해 7월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와 내년 아테네올림픽을 겨냥해 준비하고 있는 ‘극기 프로그램’중 하나. 대표팀의 서오석코치는 “새해를 맞아 선수들에게 각오를 가다듬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새벽 1시46분. 선수들은 “양궁 파이팅!”이란 구호를 목청껏 외친 뒤 야간 행군에 나섰다. 천호대교에서 여의도에 이르는 약 22km의 짧지 않은 거리. 코칭스태프는 선수들이 잡담을 못하도록 약 20m의 간격을 두고 한 명씩 출발시켰다.

선수들과 함께 발걸음을 뗀 지 10여분. 올림픽대교의 환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 밑엔 수북히 눈이 쌓여 있었다. 전날 내린 눈 때문에 걸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서오석코치는 몇몇 선수들이 바짝 붙어서 걷자 “붙지마, 빨리 떨어져”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차가운 강바람이 선수들의 얼굴을 파고 들었다. 기온이 영하 3.3도. 시드니올림픽 양궁 2관왕의 ‘신데렐라’ 윤미진은 여드름난 앳된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도 추운 지 몸을 움츠리며 종종걸음을 걸었다.

새벽 4시. 행군 2시간이 지나자 발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지난해 아시아경기대회 남자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인 최연소 국가대표 임동현(17)은 졸린 눈을 부벼가며 걸었다. 그는 “졸려 죽겠네요. 1시간밖에 못자고 나왔는데…”라며 쾡한 눈이었다.

출발 14km지점인 한강 반포지구에서 ‘꿀맛같은 휴식’이 있었다. 선수들은 코칭스태프가 준비한 사발면과 율무차를 먹으며 몸을 녹였다. 여자대표 최 진은 “UDT훈련도 했지만 야간 극기훈련은 처음이예요. 어깨도 결리고 너무 힘드네요”라며 울상. 20여분간의 휴식 뒤 선수들은 출발 구호와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선수들은 “쉬었다가 가려니 피곤함이 두배로 느껴진다”고 한마디했다.

다시 1시간을 넘게 걷자 여의도 63빌딩이 눈에 가깝게 들어왔다. 몇몇 선수들이 뛰기 시작했다.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개구장이’ 임동현과 최 진은 “내가 먼저 도착하겠다”며 뜀박질을 했다.

16명의 선수들이 극기훈련을 마친 시간은 오전 5시50분. 여의도엔 아침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남자대표팀 주장인 김경호는 “졸리기도 하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혼났다”며 “그래도 끝내니까 뿌듯하다”고 씨익 웃었다.

선수들은 인근 음식점에서 꿀맛같은 해장국으로 야간행군을 마무리지었다. 대표팀은 다음달 5일엔 온양에서 10m 다이빙 특수훈련을 실시한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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