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프랑스 지성계를 주도하였던 사르트르의 자전적 소설 ‘말(Les mots)’은 언어에 대한 평범한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두 살에 아버지를 잃고 외할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어린 사르트르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가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으로써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어린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말로 정확한 사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말을 찾아내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생각을 빌려서 정리하자면, 언어란 어떤 현실 사물을 명시적으로 지칭하는 기호라는 우리의 평범한 생각과 달리, 언어는 본래부터 타자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며 그것의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질병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제목에서도 암시되듯이 질병에 대한 의학적 설명이나 고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은 여러 질병들, 예를 들면 결핵, 암, 에이즈 같은 질병들에 대해 발병의 의학적 원인과 별도로 병명 자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그런 선입견이 바로 질병의 은유인 것이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 사용되는 은유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타난 고전적 의미를 계승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은유란 어떤 것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예컨대 장티푸스는 의학적으로 볼 때 특정 병원균에 의한 질병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들 그것을 염병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 속에는 그 질병에 대한 저주와 사회적 편견이 들어 있다. 에이즈 역시 의학적으로 볼 때 그저 하나의 질병일 뿐이다. 그러나 에이즈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동성애, 접대부, 매춘, 비정상적 성관계, 격리수용 등과 같은 부정적 언어와 결합된다. 질병은 단지 질병일 뿐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넘어선 것이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질병을 넘어선 질병에 대한 생각들에 의해 만들어진 질병에 대한 은유들을 탐색한다. 역사적 시기마다 질병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마치 이데올로기처럼 사람들에게 유통된다. 한때 결핵은 셸리나 키츠와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걸리는 병처럼 낭만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결핵은 피해야 할 저주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결핵의 질병 원인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에 대한 담론은 변한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유방 절제와 자궁암이라는 직접 경험, 그리고 에이즈로 인한 친구의 사망이라는 실존적 체험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염병에 걸렸다가 극적으로 회복했지만 그 사실을 쉬쉬해야 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의 주장은 호소력이 크다. 하지만 이 책은 병의 은유가 갖는 폭력적 성격을 세세히 드러내는 데서 끝난다. 만약 이 책에서 혹시 질병에 대한 푸코 식의 고고학이나 계보학적인 인문학적 방법론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박영욱 고려대강사·서양철학 imago10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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