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정리해 묶은 이 책의 제목은 ‘한국의 미(美)’이지만 실제 내용은 ‘조선의 미’, 그 중에서도 ‘조선 그림의 미’라고 할 수 있다. 단원 김홍도 등 조선 중후기 화가를 주로 연구해온 저자는 그림을 통해 조선의 미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일반인을 위해 옛 그림 보는 법부터 제시한다. 우선 감상에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 그림 대각선 길이의 약 1∼1.5배 정도가 가장 알맞은 거리다. 옛 사람들은 왼쪽으로 써나가는 세로쓰기 전통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림의 흐름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나아간다. 이 점을 고려할 때 그림을 ↙방향으로 보아나가야 한다. 이런 사전 지식 위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찬찬히 볼 때 그림 안에 비로소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전달된다는 것.
예를 들어 김홍도의 ‘씨름’에는 22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그냥 ‘씨름하는 장면이구나’하고 지나치지 말고 이들 사람의 표정 자세 의관 등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들의 계층 성격 심리상태를 알 수 있다. 작가의 의도는 물론 심지어 작가가 일부러 틀리게 그린 것까지 집어낼 수 있다.
옛말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知者 不如樂之者)’라고 한 것처럼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면 그림의 속살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나중에 그림의 내용이 좋아지는 건 물론 볼 때마다 새로운 감흥이 솟아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격조 높은 성리학적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한 그림으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강세황의 ‘자화상’, 이명기의 ‘채제공 초상’ 등을 소개하고 있다. ‘송하맹호도’를 보면 15㎝ 남짓한 호랑이 얼굴에 정말 실바늘같은 털을 수천번이나 반복해서 그렸는데도 전혀 헛손질이 없다.
초상화 역시 서양 초상화의 대가인 렘브란트의 작품 못지않은 세계적 수준이라는 설명. 동공까지 드러나 보이는 형형한 눈빛과 얼굴에 핀 검버섯, 수염 한올까지 묘사하는 정밀성에는 ‘터럭 한올만 달라도 내가 아니다’는 오연한 기운이 드러난다. 여기에는 그림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추하더라도 참된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살아있는 정신이 깃들여 있다. 모든 걸 세밀하게 그리는 ‘극사실주의’ 형식이 바로 성리학적 기품을 가장 잘 표현한 수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같은 그림을 세세하게 살펴보면 비례가 안 맞거나 얼굴의 눈 코 입이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림의 여백과 군더더기 없는 붓 놀림, 그리고 그림 주인공의 마음에서 본 듯한 주위 사물 등이 어우러져 여유로움과 자유의 정신이 드러나 있다.
성리학적 정신을 담아내려는 극사실주의적 묘사가 한편에 있다면 그린 이의 허허로운 마음을 담아내는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것. 점잖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 비범한 안목과 정신적인 격을 중요시하는 섬세함, 바로 조선의 문화이자 미라고 저자는 결론 맺는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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