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인기' 높으면 청장감?

  • 입력 2003년 1월 24일 18시 28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차기 경찰청장과 국세청장 적임자를 묻는 설문조사를 이들 기관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실시한 것이 알려진 뒤 경찰과 국세청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직속상관을 포함한 후보자 세 명을 거론하며 누가 청장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묻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행여 “누가 누구를 지지했더라”는 소문이 퍼질까봐 ‘입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경찰간부는 “전화로 누가 적임자냐고 묻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신선하긴 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청장 적임자를 고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국세청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세청의 한 간부는 “전화로 청장감을 묻는데 누가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었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로 설문에 응한 경찰 총경급 간부와 국세청 과장급 간부 중에서 청장감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응답을 한 사람은 설문조사 대상자의 20%에 불과했다. 인수위는 이에 대해 “다양한 여론을 청취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실시한 것일 뿐 인사 자료용이나 인선 절차와는 거리가 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에 응한 사람들의 느낌은 다른 것 같다. 두 조직의 간부 직원들은 거의 대부분 후보군에 포함된 상관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하라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또 각각 9만1000여명(전경 의경 제외)과 1만7000여명인 경찰과 세무공무원 중 수십명의 의견을 가지고 ‘다양한 여론’을 수렴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인수위측은 “그럼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낙점하는 게 좋단 말이냐. 그나마 여론을 청취해 보려는 노력은 왜 평가하지 않나”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치안과 세무 행정의 총책임자를 인선하면서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여론조사란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결국 지연 학연 등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응답이 좌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훈 사회1부 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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