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면에서 엊그제 노무현(盧武鉉) 당선자가 민주당 연찬회에서 한 ‘반(半)통령’ 발언은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는 “대통령당선자인지, 반통령당선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다음 총선에서 못 이기면 반통령이요,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반(半)권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의 효율적 운용을 강조한 것이겠지만 당선자의 발언으로 적절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무엇보다 노 당선자가 ‘수(數)의 힘’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비치기 쉽다. ‘상생(相生)정치’에 대한 의지도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 발언 후 한나라당에서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 모처럼 술술 풀리던 정국 분위기가 꼬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특히 ‘반통령’ 발언은 다수당에 총리지명권을 주겠다는 ‘프랑스식 대통령제’ 구상과 함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정치권에 심어줄 수 있다. 당선자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인위적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들이 ‘총선승리용’으로 치부돼 국민적 지지를 반감시킬 수도 있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다. 여당이 승리하지 못하면 ‘반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스스로 특정 정파만의 정치를 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노 당선자는 총선을 잊어야 한다. 그가 추구하는 설득의 정치, 타협의 정치가 제대로 펼쳐져 거야(巨野)가 발목 잡는 장애물이 아닌 국정의 건전한 동반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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