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독자인권위원회(POC·Press Oversight Committee) 제9차 정기회의는 신문기사에서 신체장애에 비유한 표현이 무심코 사용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해 ‘장애인 관련 보도표현과 인권보호’를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이용훈(李容勳·전 대법관) 위원장과 이종왕(李鍾旺·변호사) 김영석(金永錫·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양창순(楊昌順·신경정신과 전문의) 위원은 소수자나 소외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세심하고 세련된 표현을 개발하고 가려서 사용하는 노력이 좀더 성숙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사회=김종완 본사 독자서비스센터장>》
―최근 본보 지면에 ‘절름발이 내각’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독자로부터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이라는 항의가 있었습니다. 장애 관련 표현을 불가피하게 사용하게 되는 경우라도 더 신중함이 요구되겠는데요.
▽이용훈 위원장=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무심코 신체장애에 관련한 표현을 쓸 수 있는데 이것이 장애인들에게는 마음의 큰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김영석 위원=신체장애에 관련한 표현이 신문 방송과 각종 출판물에서 구체적인 기준 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부끄러운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장애 관련 표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엄격하게 지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양창순 위원=언어적인 표현은 사회구성원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규정하게 됩니다. 사람은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평등한 권리가 있으며, 나아가 누구라도 후천적인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이종왕 위원=사회적 신분이나 경제능력 측면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가 요구되듯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말과 글을 세심하게 가려서 쓰는 배려가 절실합니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용훈=소수자나 소외자에 대해 예의를 지키고 이해하는 노력은 사회의 품격을 유지하는 길이고 ‘왕따’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도 됩니다. 사회 전반이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고 품는 사회운동이 각 분야에서 꾸준히 이루어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는 과거 장애인에 대해 ‘handicapped’ 또는 ‘disabled’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런 단어 자체가 차별과 편견을 낳을 수 있다고 해서 요즘은 장애인을 ‘the physically challenged’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김영석=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야말로 인권보호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70, 8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하다는 이유로 인권문제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90년대에 들어 인권의 개념이 본격 도입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명명화(labeling)의 문제도 관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청소부’의 사회적 명칭을 ‘환경미화원’으로 바꾼 것이 한 예입니다.
▽이용훈=신문과 방송 등 대중매체는 독자와 시청자가 사회를 인식하는 기준을 설정해 준다는 점에서 더 세련된 표현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셈입니다. 평등해야 할 인격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비교한다든지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어감을 드러내는 용어의 사용은 자제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이종왕=상대적인 비교의 개념인 ‘정상인’보다는 평등의 개념인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주체적인 인격체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인식의 기초가 된다고 봅니다. 인격권을 감안한다면 불쾌한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긍정적인 대체 용어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김영석=한 예로 흔히 사용하기 쉬운 ‘대머리’라는 비인격적인 표현도 미국에서는 ‘bald’라는 직설적인 표현보다 머리빗이 필요없다는 의미로 ‘comb free’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장애인먼저실천중앙협의회가 2001년 한 해 동안 10개 중앙일간지를 대상으로 ‘장애 관련 표현’을 모니터한 결과를 보면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벙어리 냉가슴’ ‘안팎 곱사등이’ ‘눈뜬 장님’ 등 장애를 부정적으로 비유하는 속담이나 관용구의 사용이 적지 않습니다.
▽이종왕=물론 이런 사례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적으로 사용됐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기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면 이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단순히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관행으로 지나칠 사안이 아닙니다.
▽김영석=기사 문장에서 그 같은 장애 관련 표현을 과연 불가피하게 써야만 하는가 하는 점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심하게 사용하더라도 그 표현이 상대방을 가슴아프게 한다면 마땅히 고쳐야 합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용훈=백보 양보해 현실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인격권 보호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마땅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양창순=장애 관련 관용구나 속담은 대체로 기사 내용의 맛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고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세련되고 완곡하면서도 정곡을 찌를 수 있는 대체용어를 찾아내고 사용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리=김종하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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