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명호/"교회로 돌아오세요"

  • 입력 2003년 1월 24일 19시 01분


선거 때만 되면 이름 있는 큰절의 법회에 후보 일행이 법석을 떨며 나타나는 일이 관행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기독교인이나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사람들도 절을 찾기는 마찬가지다. 그런가하면 평소에 교회에 그림자도 비치지 않던 후보가 기독교 교회 예배나 가톨릭 교회 미사에 슬그머니 나타나기도 한다. 간혹 행동과 그 자리에서의 언행 때문에 상대방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특별한 볼일 없이도 김수환 추기경을 한번 만나려는 것도 대선 후보들의 공통점이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속내는 보기에 좋지 않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혹 아닐까.

▷우연인지 모르지만 요즘 한국 정치에서 가톨릭 신자의 위력(?)은 대단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가톨릭신자로서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된 데다 지난번 대선 때 득표 순위 1, 2, 3위를 한 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후보도 모두 가톨릭 신자다. 한국 가톨릭 신자는 400만명 정도다. 불교나 기독교 신자 수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다. 그런데도 이들이 그만한 표를 받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유권자는 투표할 때 후보의 신앙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기를 쓰고 종교계를 찾아다니는 정치인들의 기대와는 영 딴판이다.

▷노 당선자는 후보 시절인 지난해 6월 김 추기경을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영세를 받았습니다. 세례명이 유스토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제대로 못 나가 프로필에 종교가 없다고 씁니다.”(노) “있다고 쓰면 성당에 나가야 하니까….”(김) “영세까지 받고 그러면 안 된다고 신부님들이 꾸중해 난처합니다.”(노) “하느님을 믿나요?”(김) “…믿습니다.”(노) “확실하게 믿나요?”(김) “희미하게… 믿습니다. 앞으로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습니다.”(노) 그러나 노 당선자의 공식홈페이지 종교 항목에는 아직 ‘무’로 적혀 있다.

▷김 추기경이 최근 한 가톨릭 교회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노 당선자에게 다시 신앙의 길로 돌아오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기도를 통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하느님께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던가. 사실 앞으로 부닥칠 어려움들을 극복할 길을 찾기 위해서라면 없던 신앙이라도 새로 가진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물론 결정은 당연히 노 당선자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당선자는 추기경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나라에 대한 염려와 깊은 애정을 항상 간직해 국정에서는 방황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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