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 입력 2003년 1월 24일 19시 10분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한창훈 지음/248쪽 8000원 창작과 비평사

‘고립을 찾아 저 먼 섬으로 들어’갔던 작가 한창훈(40)이 두 해 동안 겪은 경험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 마을도 버리고 섬의 외진 곳에 거처를 두고 홀로 살아가는 ‘나’. 1인칭 화자의 목소리로 전하는 열두 가지 이야기가 연작 형태의 소설로 묶였다.

2장 ‘어떤 여인네, 수(琇)’에서 ‘나’는 집 앞의 밭을 매는 여인네가 어린 시절 뒷집에 살던 꾀죄죄한 소녀였다는 것을 알아챈다. 날마다 배고파하며 뭐 하나 얻어먹을 때까지 끈질기게 ‘나’의 집에 붙어있던 소녀는, 어느 날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느닷없이 소변을 누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나’는 찐 감자를 먹는 그 여인네에게서 옛날 소녀의 모습을 본다.

6장 ‘어떤 죽음에 대한 보고서’. 목이버섯을 따러 간 두 할머니의 죽음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들은 평안함과 힘들지 않은 생을 구하려 끝없이 몸을 움직여 수고했지만 정작 죽음 뒤에야 그것들과 만날 수 있었다.’

갯바람과 함께 쓸려오는 삶과 사람, 자연에 대한 작가의 성찰은 분주함에 몸을 내맡긴 채 갈 길을 잃은 이들에게 고요한 위안을 준다.

작가 스스로 ‘적막과 죽음의 보고서’라 칭하는 이 작품에 대해 문학평론가 류보선은 “이 소설에서 자연, 구체적으로 바다는 신성한 존재이며 인간은 다만 헛것만을 좇는 미물이다. 이러한 전도(顚倒)는 자기만을 배려하는 현존재들과 현존재들을 그렇게 살도록 하는 모더니티에 대한 처절한 자기비판”이라고 평한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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