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성린/'불안하지 않은 개혁'을

  • 입력 2003년 1월 26일 18시 44분


새 정부는 앞으로 5년간 경제정책의 지침을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란 ‘신성장’ 전략으로 정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과학기술 혁신과 신성장’ ‘참여복지와 삶의 질 향상’이란 네 가지 국정과제를 설정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신성장’과 ‘참여복지’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아직은 이들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필자와 같은 경제전문가조차 분명치 않다. 그러나 노 당선자 관계자들은 이들 단어를 통해 그들이 반재벌적이고 분배지상주의라는 세간의 기우를 떨쳐버리고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경제적 비전을 함축하고자 했을 것이다. 기득권세력의 타파와 빈곤서민층을 위한 공평한 분배가 그들의 이상이라면 21세기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성장정책 모호하고 장기적▼

지난 3주간의 인수위 토론 과정을 거쳐 네 가지 국정과제의 구체적 실천방안이 간헐적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흘러나온 대안들을 보면 공평한 분배와 서민생활의 향상도 중요하지만 성장도 매우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장을 위해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과 과학기술 및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 규제완화와 기업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매년 5% 이상의 실질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한다.

한편 공평한 분배를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 강화, 저소득근로자 근로소득세액공제 도입, 전국민 건강보장제 실현, 성 장애 학벌 비정규직 외국인 관련 5대 차별 해소, 장애연금제 도입, 농림예산 확충을 통한 농업인 복지 향상, 건강보험 재정통합, 동일노동 동일임금제 도입, 외국인 고용허가제,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강화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탈세척결과 공평과세를 위해 자영업자 소득파악 강화, 상속 증여세 완전포괄제 도입, 부동산 보유과세 강화, 고소득 자영업에 대한 현금카드와 지정영수증 발행 등도 계획돼 있다.

과연 이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을까. 인수위가 제시하는 성장을 위한 대안은 모호하고 장기적인 데 반해 분배를 위한 정책은 분명하고 즉시적이어서 분배의 효과가 성장의 효과를 압도할 것 같다. 더욱이 당장 올해부터 국가부채와 공적자금의 원리금 상환을 위해 매년 10조원 이상이 필요한 정부의 재정상태로는 이 모든 정책을 액면 그대로 도입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새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재벌구조를 타파하려고 한다. 기업투명성 제고를 위해 증권분야 집단소송제도와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 도입, 출자총액제한제와 사외이사제 강화, 재벌기업 대주주 친인척의 보유주식 공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반면 기업활성화를 위해 연결납세제 도입, 규제완화, 수도권 정책 완화, 준조세 정비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벌개혁의 목표가 재벌의 문제점을 시정해 더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어야지, 재벌기업을 무조건 타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집단소송제, 공시제, 사외이사제 강화 등을 통해 기업투명성은 높이되 출자총액제한제, 대기업집단지정제와 같은 규제는 완화하는 것이 마땅하다.

▼재벌 타파대상 삼아서야▼

새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경제 주체를 불안하게 하는 구호로서의 개혁보다는 핵심적인 것 하나를 고침으로써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하는 조용하고 효율적인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있는 법과 제도를 제대로 적용함으로써 충분히 목표달성이 가능하다면 굳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수반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 상속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지정영수증제, 고용허가제, 건강보험 재정통합, 국세의 지방세 전환 등이 그에 해당한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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