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쓴소리’와 ‘발목잡기’

  • 입력 2003년 1월 26일 18시 48분


이해찬 교육부장관. DJ정권 초대 교육부장관 시절의 그를 필자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이 장관은 교육계의 개혁 없이는 우리 교육의 미래가 없으며 아울러 국가의 미래도 어두워진다며 교육개혁의 방향을 차근차근 설명하곤 했다. 학생들의 개성과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개선하고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일선 현장에 진취성과 생동감을 불어넣어야 하며….

당시 그와 그가 교육부 내에서 개혁작업의 동반자로 전진 배치했던 40대 초중반의 행시 출신 국장들은 수십년 동안 큰 변화라고는 없이 정체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던 교육계를 정열적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촌지 등 학원부조리 척결작업에 나서고 교원정년을 단축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지금 이 전 장관의 교육개혁은 실패작으로 낙인찍혀 DJ정권의 주요 정책 실패 사례의 하나가 되어 있다. 이는 최근 대통령직인수위 보고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스스로가 인정했을 정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아직도 이 전 장관의 교육개혁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코 흥분하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논리적으로 상대방에게 설명해 나가던 그 당시의 이 장관을 생각하면 아직도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런 이 전 장관의 교육개혁 작업이 왜 이처럼 비난투성이가 되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개혁정책이 갖기 마련인 양면성을 간과한 탓이었다.

정책이 갖는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고 부정적인 효과를 계산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가도록 하겠다는 정책이 빚은 이해찬 1세대의 전반적인 학력저하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큰 실수는 개혁의 동반자로 삼아야 할 전체 교원들에게 개혁과 청산의 대상이라고 느끼게 만든 점이었다. 그 결과 교육현장에서 광범한 반발과 냉소주의가 생겨났으며 그의 개혁작업은 결국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이 전 장관의 실패는 정책, 특히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위정자들에게는 중요한 사례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그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진솔해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차근차근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 가는 그의 모습에서 음습함이라거나 정치적 복선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가 가고자 하는 개혁의 방향도 틀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비판은 잘못된 일일까.

요즘 언론의 노 당선자 진영에 대한 비판과 우려 섞인 여러 가지 지적에 대해 당선자측에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전해지고 있다. 보수 수구언론의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발목잡기이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정권에 대한 재 뿌리기라는 등의 반응이 그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해 경실련이 최근 발표한 ‘새 정부와 관계 설정에 대한 입장’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일부 시민단체가 DJ정권에 포섭되어 자율성과 중립성이 훼손되었으며 그 결과 권력에 대한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국정 실패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요지의 뼈아픈 자성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그 성공을 위해서도 시민단체 본연의 감시와 비판기능을 다하겠다는 경실련의 다짐은 바로 모든 언론이 새겨야 할 다짐이기도 하다.

아무리 방향이 좋아도 방법론이 나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이 전 장관의 경우는 말해주고 있다. 만약 비판의 목소리가 고깝게 들린다면 노 당선자측은 스스로 ‘이게 바로 DJ가 걸어간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신호가 아닐까’ 하고 자문해볼 일이다. 박수와 찬양을 보내기보다 쓴소리를 마다 하지 않는 언론과 시민단체들이야말로 어쩌면 새 정권의 가장 충실한 우군일지도 모른다.

정동우 사회1부장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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