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對北특사 발목잡는 한나라

  • 입력 2003년 1월 27일 19시 03분


“임동원(林東源)씨는 퍼주기식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남북관계를 왜곡시킨 장본인이다. 임씨가 대통령 특사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가는 게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킬지 의심스럽다.”

한나라당 하순봉(河舜鳳) 최고위원은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임 특사의 방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작심한 듯 “임씨는 지난해 4월에도 방북했지만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어떤 해결책이나 뚜렷한 성과없이 그냥 돌아왔다. 김대중(金大中) 정권은 민족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바로 전날 당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염원하는 국민은 특사 파북에 거는 기대가 크다. 특사단이 좋은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고 했던 격려의 메시지와는 거리가 먼 주장이었다.

평소 같으면 하 최고위원의 발언은 햇볕정책의 부정적 산물에 대한 야당의 건전한 비판이나 견제 정도로 간주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햇볕정책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임 특사에게 ‘대북 포용정책으로 우리가 얻은 게 북한의 비밀 핵개발과 한반도의 긴장고조밖에 더 있느냐’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북핵 파문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북핵 사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하겠다는 생각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임 특사의 방북결과를 보고 특별이사회를 개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북한을 설득해보겠다고 떠나는 대통령 특사의 뒤에다 독설을 퍼부으며 발목부터 잡는 건 책임 있는 공당과 정치인의 태도가 아니다. 민족의 앞날을 좌우할 북핵 위기는 햇볕정책의 공과를 따진 뒤 대처할 만큼 한가한 사안이 아니며 여야간 정쟁의 대상이 돼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뒤 한나라당은 진정으로 국민에게 인정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원대한 목표도 일단 국가적 현안에 대해서는 정파를 초월해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 나갈 때 더 빨리 달성될 수 있지 않을까.

이종훈 정치부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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