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바뀌는데 조용하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넘쳐나는 개혁 의지를 주체하지 못해 일어나는 해프닝의 성격을 넘은 것 같다.
▼잇단 과잉행보 度 넘어▼
인수위는 스스로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한시적 기구든 상설기구든, 역할이 있는 법이다. 또 스스로의 역할 지각이 있는 것이다. 혹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기관으로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자 그대로 새 정부 출범을 위해 필요한 국정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인수위의 임무이고, 그것이 국민이 인수위에 바라고 있는 역할 기대일 터이다. 새 정부 준비라면 조용하게 국정을 파악하며 ‘말하기’보다 ‘듣기’에 몰두해야 할 텐데, 마치 ‘관료 길들이기’나 ‘재계 길들이기’에 나선 것처럼 과잉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스스로를 권력기관이나 정책결정기관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인수위는 권력기관은 아니지만 권력을 갖고 있는 기관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정부 각 부처나 재계, 검찰 등 관련 당사자들에게 인수위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초점이다. 하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인수위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권력에는 ‘군림하는 권력’도 있고 ‘봉사하는 권력’도 있다는 사실이다. 군림하는 권력의 속성은 토머스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의 권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권력은 지배와 종속관계가 특징인데 우리 사회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왕적 권력은 바로 이 리바이어던 권력의 아류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말하는 권력은 봉사하는 권력이며 이는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에 비유된다. 대리인은 바로 주인의 뜻을 이행하는 데서 그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이 손안에 있소이다” 하고 외치는 듯한 인수위의 태도는 봉사하는 권력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인수위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새 정부에서 그대로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민주정치는 행정부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어서 입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스스로를 ‘절반의 대통령’, 즉 ‘반(半)통령’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인수위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전권을 가진 다수파 정부처럼 위세가 당당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수위는 기득권 세력을 질타하는 개혁세력의 상징도 아니고, 낡은 것의 청산을 외치는 개혁의 전도사도 아니다.
다만 ‘김대중호(號)’에서 ‘노무현호’로 배의 선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교체업무를 맡고 있을 뿐이다. 이 맥락에서 업무의 파악과 준비가 중요한 이유는 정부라는 배는 선장 교체의 와중에도 정지되어 있지 않고 계속 항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장이 바뀌면서도 기존의 배가 무리없이 항해를 계속할 수 있도록 업무절차를 협의하는 것이다.
▼국정파악 본연의 자세 지켜야▼
지금은 개혁의 이름으로 잔뜩 새로운 정책들을 쏟아낸다든지, 혹은 개혁적 공약을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정부 관계자들을 주눅들게 할 때가 결코 아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보다 신중한 절차에 따라 다양한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면서 하나 하나 추진해 나가야 할 일들이다. 그럼에도 지금 인수위가 하고 있는 일을 보노라면 항해하는 배의 선장 교체가 아니라 마치 새로운 배를 처음부터 건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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