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정현종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 출간

  • 입력 2003년 1월 28일 19시 19분


시인 정현종씨(연세대 교수·국문학·사진)의 산문집 ‘날아라 버스야’(백년글사랑)에서는 저 깊숙한 곳에 웅크린 삶의 진정(眞情)을 깨우는 맑은 종소리가 울린다. 시인의 언어로 정갈하게 다듬어진 글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 또한 새롭다.

시인은 재떨이에서 ‘신성함’과 ‘대지의 이미지’를 본다. 재와 꽁초를 ‘용납’하는 재떨이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떠올리게 한다. 담배가 불타 재가 되는 동안 사람들의 불안 초조 망설임 등도 불타 조금씩 재가 된다. 재로부터 듣는 절대 고요!

시인은 고백한다. ‘바라보는 일은 그것 자체로서 완전한 행동이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 속에서 바라보는 일은 가장 아름다운 일 중의 하나이다.’

이제 그는 춤과 몸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무대는 1975년 미국 ‘메이플라워’ 아파트 앞 잔디밭. 시인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카테리나를 떠올린다. 다리를 저는 그에게서 넘쳐나는 생명력과 육체의 에너지를 더불어 나누는 춤추는 장면이 겹쳐진다.

춤은 ‘인간이 일차적으로 살과 뼈로 되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존재론적 진실을 공적으로 확인하고 나타내는 의식’이며 ‘우리의 육체에 대한 어떤 종류의 감시로부터도 자유롭다’고 시인은 설명한다.

그는 몸과 그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특히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나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읊는 시. ‘사람들이 나무 아래로 걸어온다/ 움직임은 이쁘구나/ 모든 움직임은 이쁘구나/ 특히 나무의 은혜여.’ (움직임은 이쁘구나 나무의 은혜여)

산문집의 책장을 넘기는 것은 곧 시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다. 그가 마침내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란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실과 역사는 끊임없이 우리의 꿈의 실현을 유예하면서 미래화하지만 지복(至福)의 순간을 허락하는 시는 우리의 현재를 탈환하고 회복한다.’ ‘시인의 꿈의 저 변함 없는 생리에 따라 우리를 생명의 원초로 되돌려 놓는 영혼의 강장제, 시는 우리의 영원한 어린 시절이다.’

괴리되지 않은, 시인의 인생과 시론(詩論)이 발하는 온기가 산문집 곳곳에 배어 있다. 시인이 책머리에 붙인 말처럼 ‘그악스럽고 혼탁하고 천박한 영혼들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것, 참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책 속에 담겨 있는 까닭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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