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혈세 사업’ 고무줄 평가

  • 입력 2003년 2월 5일 18시 14분


70년대 한국수자원공사 건물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 달에 한두 번은 헬기를 타고 회사로 들이닥쳤지요. 집무실 의자에 턱 앉으면서 ‘요즘 애로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건설장비가 부족하다고 하면 다음 날로 보충됐고 주민 반대가 심하다고 호소하면 다음날로 그 지역 경찰서장이 ‘날아갔어요’. 한번은, 아마 안동댐 건설할 때 같은데 직원 한 명이 납품업체에서 뇌물을 받았어요. 사장이 이 사건을 보고하며 머리 숙여 사죄했는데 박 대통령이 ‘얼마나 (생활이) 어려우면 그랬겠느냐’며 즉시 예산담당 장관에게 연락해 오히려 전 직원이 보너스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1960, 70년대 국토개발의 최일선에서 청년기를 보낸 한 건설 역군은 얼마 전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화려한 시절’을 회고하며 환경문제 때문에 입지가 좁아지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물론 요즘은 지도자의 즉흥적인 구상이나 말 한마디에 도로가 닦이고 갯벌이 메워지며 댐이 건설되는 시대는 아니다. 대형 국책사업은 경제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사업 진행과 함께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 사업비 500억원이 넘는 건설사업은 사업에서 발생되는 편익(benefit)을 투입되는 비용(cost)으로 나누었을 때 몫이 1이 넘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이른바 ‘비용편익(B/C)분석’이 의무화돼 있다. 다만 무엇을 편익으로, 무엇을 비용으로 할 것인지는 정설이 없다.

갯벌을 메워 농지를 만드는 새만금사업도 환경문제에 부닥치자 뒤늦게 타당성 조사를 다시 하는 진통 끝에 사업이 재개됐다. 이때 반대론자를 잠재운 것이 바로 B/C 비율이 1이 넘는다는 보고서였다. 머리 좋은 경제학자들이 복잡한 수식과 계산 끝에 명쾌하게 내놓은 숫자에 아마추어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하지만 쌀이 남아돌아 보관비용만 수천억원이 드는 마당에 거대한 농경지를 만드는 것이 과연 경제적이냐에 대한 비판은 아직도 여전하다.

사업추진 여부를 놓고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경인운하사업도 이런 ‘계량화된’ 절차를 거쳤다. 그런데 8개의 사업 시나리오 중 7개에서 사업 타당성이 있다는 건설교통부의 보고에 대해 환경단체가 B/C 비율 조작 시비를 제기하고 있다. 6500억원이 소요되는 굴포천 방수로 사업비를 총사업비(1조8000억원)에서 빼는 방식으로 경제성을 부풀렸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

국책연구기관이 정부의 입맛에 맞춰 용역 결과를 왜곡하거나 정부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구 과정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94년부터 98년까지 타당성 조사를 거친 33건의 사업 중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은 것은 울릉공항 단 1건이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고백이다. 이마저도 당초에는 B/C 비율이 1 이상이었는데 자신들이 생각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판단에 담당 공무원들이 회의를 열어 결과를 뒤집었다는 후문이다.

경제 교통 환경 등의 분야에서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형 국책사업을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만 가지고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숫자놀음으로 국민의 시야를 가리는 것은 더욱 곤란하다. 하물며 그 숫자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면 무얼 더 말하랴.

정성희 사회2부 차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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