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입법예고마저 뒤집는 인수위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31분


‘국정 파악’이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크게 벗어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궤도 이탈’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인수위 활동 초기에 있었던 월권과 파행은 과욕이 빚은 시행착오라고 생각할 여지나 있지만 활동기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가운데 비슷한 사례들이 여전히 반복되는 것은 새 정부에 대한 불필요한 불안감과 오해만 부를 뿐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수위는 3년여에 걸친 여론수렴과 입법예고까지 마친 외국인학교 입학완화 방침을 돌연 백지화했다. 제도적 절차 무시와 그동안의 행정력 낭비 문제를 떠나 우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제 있었던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계획 국정토론회’는 경제특구를 둘러싼 인수위와 재정경제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당초보다 대폭 축소되어 열리는 일이 일어났다.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자격을 완화하는 교육부의 방침은 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방침이 알려지자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등 논란이 있었지만 공청회 간담회를 거치면서 최종 결정이 내려져 지난해 12월 입법예고를 했다. 꽤 공을 들였던 사회적 논의 과정이 단번에 허공에 떠버린 것이다. 3월 초 시행을 한 달도 안 남긴 채 갑작스레 내려진 결정이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교육정책의 잦은 변경에 대해 국민은 짜증스러움을 넘어 혐오감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도 인수위의 결정은 성급했고 사려 깊지 않았다. 국정토론회의 축소도 경제특구에 관심 있는 외국과 해외투자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수위의 역할은 정부의 업무와 현안을 파악하는 것이다. 업무를 정확히 헤아리기만 하면 됐지,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인수위 활동은 5년 후에도 있다. 이대로 활동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인가. 가급적 조용히 이뤄져야 할 인수위의 활동이 갈등의 불씨만 양산한 채 막을 내리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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