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부자'…"억만장자, 그들은 種이 다르다"

  • 입력 2003년 2월 7일 18시 07분



◇'부자'/리처드 코니프 지음 이상근 옮김/456쪽 1만5000원 까치

바로 오늘, 전 국민을 들뜨게 한 로또, 700억원의 당첨자가 나올 것이다.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은 열패감을 느끼면서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첨자는 과연 행복할까, 벼락부자가 된 그는 틀림없이 과거와는 달라질 거야.”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천만의 말씀, 그 벼락부자는 단순히 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당신과는 다른 종이 됐다”고 선언할 것이다.

저자는 부자를 호모 사피엔스 페쿠니오수스(Pecuniosus)라고 규정한다. DNA의 98% 이상 똑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침팬지와 인간처럼 페쿠니오수스와 일반인들은 행동과 사고방식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이 책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부자들의 갖가지 행동양태를 동물의 그것과 대비해서 비교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수다쟁이’라는 새의 우두머리는 매우 맛있는 먹이를 잡으면 자신이 먹지 않는다. 대신 저 멀리 숨어있는 2인자를 찾아내 억지로 부리를 벌리게 한 다음 그 먹이를 쑤셔 넣는다. 우두머리는 이 같은 자선으로 자신의 자애로움을 부하들에게 과시하며 자신의 우월을 확인시킨다.

마치 CNN의 창시자 테드 터너가 또 다른 언론재벌 루퍼드 머독과 경쟁하던 와중에 유엔에 10억달러를 기부한 것과 비슷한 행위다. 테드 터너는 자신이 루퍼드 머독과 다른 부류의 자애로운 사업가이며 동시에 세계최고의 갑부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은, 또는 더 뛰어난 의식을 가진 부자임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이고 그의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이런 예도 있다. 넓은 꼬리를 가진 미국산 벌새는 경쟁자들과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18m를 총알같이 솟구쳐 올랐다가는 다시 내리꽂는 힘찬 비행을 한시간에 45번이나 반복한다. 이 위험한 행동은 오라클의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이 12m의 파고와 시속 145㎞의 악천후를 만나 동료 6명이 죽은 대양(大洋) 요트 레이스에 참가했던 무모함과 비슷하다. 이 모든 건 오직 그가 일반인은 물론 다른 부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주로 자연사(自然史)에 관한 주제의 글을 쓰는 저술가인 저자는 신기할 정도로 부자들의 행동이 동물의 그것과 연결되는 고리를 일일이 찾아낸다.

부자들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이는 구도의 사진을 좋아한다.실물보다 크게 보일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위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광대역 디지털송신 관련 회사인 브로드컴의 총수 헨리 니컬러스.

부자 주변에서 쉽게 관찰되는 아부 행동이 비비 집단의 털 다듬어주기와 얼마나 유사한지, 오래된 부자들이 신흥부자들을 혐오하는 현상이 산악 고릴라집단에서처럼 신참 고릴라를 괴롭히는 행동과 얼마나 똑같은지를 유머 넘치고 신랄한 필치로 보여준다.

부자들은 돈이 많아서 돈을 펑펑 쓰는 게 아니다. 돈이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 돈을 쓸 뿐이다. 돈을 쓴다는 것으로 차별성을 갖지 못할 때 부자는 오히려 돈을 안 쓰는 구두쇠 노릇을 하면서 차별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결국 부자는 생식적으로 일반인과 같을지는 몰라도 문화적으론 외계에서 온 생명체처럼 완전히 다른 종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을 원용하면 부자들은 백만장자가 우연히 만난 거리의 여자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다는 줄거리의 영화 ‘프리티 우먼’을 보면서 침팬지와 인간의 결합을 보는 것처럼 끔찍하고 최악의 영화란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적어도 부자들의 세 가지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된다. ‘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부가 가져다주는 권력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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