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중국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세계의 공장’에서 벗어나 ‘세계의 시장’으로 진입 중인 중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과연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일방적 패권이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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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질문은 어떤 면에서 천기누설(天機漏洩)을 기대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붕괴론을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낙관론을 외치기도 한다. 중국의 성장을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자는 주장의 반대편에서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위협론의 목소리도 들린다. 정확한 대답은 미래가 알려 주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역사의 일반적 발전 방향과 중국적 특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중국처럼 문화와 전통이 강하게 작용하는 나라는 더욱 그러하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고민을 풀어주기에 적절하다. 대담 형식의 이 책은 현존 최고의 중국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리쩌허우(李澤厚)와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문학비평가 류짜이푸(劉再復)라는 두 고수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독자들은 두 사람의 대담을 통해 20세기의 중국 역사를 돌아보며 마오쩌둥(毛澤東) 쑨원(孫文) 캉유웨이(康有爲)와 같은 중국 현대사의 주인공을 만나며 철학과 문학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다. 아울러 21세기의 중국을 전망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도 적지 않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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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대화는 1989년 톈안먼의 비극 이후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나와 있던 1992년 초에 이뤄졌는데 주로 류짜이푸가 리쩌허우에게 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리쩌허우는 20세기 중국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군중의 폭력 등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식으로 기존의 제도와 권위를 전복시키는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여기에는 ‘이데올로기’와 ‘전쟁 경험’을 맹신한 마오쩌둥의 오류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혁명은 역사와 윤리의 본질적 괴리, 수단(폭력)과 목적(이상) 사이의 갈등 때문에 결코 바람직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은 혁명이 아니라 개량이 필요한데 이는 더욱 어려운 과제다. 여기서 그는 중국의 미래를 위해 ‘경제발전→개인적 자유→사회 정의→정치 민주화’라는 논리적이고 역사적인 순서를 제시한다. 21세기는 혁명이 아닌 법치와 개량이, 정치가 아닌 경제가, 계급 투쟁이 아닌 계급 공존이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혁명’이 아니라 ‘과학적 이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잘 가라! 혁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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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3세인 리쩌허우는 80년대 이후 중국의 학술계와 지식인 사회에서 ‘태산’처럼 존중받던 인물로 최근까지도 저서를 발간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만은 중국 대륙에서 ‘금서’가 돼 있다. 그 이유를 알 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민족과 국가의 장래나 천하의 대사에 대한 고담준론만 있다고 여긴다면 그야말로 성급한 판단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결코 딱딱하고 지루한 주제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철학자와 창작에도 종사하는 평론가 사이의 대화답게 곳곳에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생을 논한다. 톡 쏘는 맛이 있는가 하면, 잘 익은 와인처럼 은은한 향기와 색채도 드러난다. 중국 현대사의 인물들에 대한 예리하고도 신랄한 평가나 유머러스한 언급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이제 대한민국호의 선장도 바뀌었다. 차기 정부의 과제는 결코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저자들이 누차 강조하듯이 개혁이란 혁명보다 어렵다.
이동철 용인대 교수·중국철학 ledphil@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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