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붉은 포대기'…춥고 지친 삶을 포대기로 감싸듯

  • 입력 2003년 2월 7일 18시 12분


◇붉은 포대기/공선옥 지음 292쪽 9000원 삼신각

사회적 통념이 거침없이 내리긋는 사선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퍼부어지는 곳, 심지어 가족들마저 수치스러워하는 곳에도 사랑은 깃들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혼 전에 아이를 가졌을 경우, 여성의 선택과 권리는 오간데 없고 사회의 질타와 비난만이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되잖아요. 사랑 결혼 연애 임신에 있어 여성의 입장에서 판단하기보다는 남성적인 구도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요. 남성에게 기울어진 무게 중심의 균형을 잡고 싶었습니다.”

작가 공선옥(40)은 반문한다. 상대방이, 곧 남성이 인정을 해야만 제대로 된 사랑인가. 그에게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사랑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는 약자(弱者)의 권리가 더없이 귀하다.

인혜는 암으로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화재로 사랑채가 무너져 내린 집은 신산하기만 하다. 정신을 놓아버린 할머니, 전처 소생들에게 집착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황희조, 정신지체인 동생 수혜, 오빠 태건과 태준을 비롯해 사촌인 정식 부부, 이들 모두 불완전한 관계를 위태롭게 유지할 뿐이다.

아내와 이혼한 뒤 시골생활을 시작한 지섭을 사랑하는 수혜. 순간은 진실했지만 지섭과의 사랑은 짧았고 수혜는 임신한다. 인혜는 아득해지고 만다.

“모든 권리는 수혜에게 있어요. 수혜 ‘자신’이 선택하고 받아들인 사랑이니까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이 그 권리를 박탈하려고 하지요. 경제적 정신적인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수많은 가혹한 일을 생각해 보세요. 또 미혼모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취급되는 현실도요.”

인혜조차 “수혜를 지켜줘야 한답시고 그냥 두는 것이 어쩌면 또 하나의 폭력”이라며 아이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어머니 박영매만이 수혜의 아기를 지켜주고 싶어한다. 아이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모른 척하며 희조와 결혼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인혜는 힘들고 지친 영혼이에요. 과도기적인 인물로 어머니와 수혜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어요. 인혜는 엄마가 썼던 포대기로 이제 수혜의 아기를 업어 키우게 되겠지요.”

영매의 죽음 뒤 희조는 전처 소생들을 사랑으로 돌봤던 영매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낀다. 희조는 영매가 손수 만든 붉은 포대기와 낡은 기저귀, 배냇옷 등을 내놓으며 인혜 수혜 등 영매와의 사이에 낳았던 자식들과 심정적인 화해를 시도한다.

태준의 아이들, 병조 삼촌, 지친 올케, 수혜와 그 아이 같은 약한 이들에게 민감한 촉수로 반응하는 인혜는 이들을 징글징글해 했으면서도 결국 자기도 모르게 이들과 소통하면서 사랑을 불신했던 스스로를 치유해간다.

영매는 이야기한다. “인생은 참 힘들고 외롭고 쓸쓸해.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 거추장스러워.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인생도 살다보면 인이 박혀서 그런대로 포근하단다. 정 붙이고 살다보면 살 만한 게 또 인생인 것 같아.”

가난하고 외로운 인생들이 서로 화해의 관계를 가꿔 가는 세상을, ‘포대기 정신’을 작가 공선옥은 꿈꾸고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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