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나 인류학 서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언제나 지독히도 야속한 사람이었다. 원전을 읽어도 번역본을 읽고 또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몰라 끝없이 나 자신을 자책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몇 가지 해제들을 들춰보고 마치 원전을 읽은 듯이 떠벌렸던 적도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이 책은 나로 하여금 그러한 비겁함을 과감히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디디에 에리봉이라는 예리한 학술기자가 레비 스트로스라는 거대한 인류학자의 머리와 가슴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마치 화려한 문양의 직물을 짜내기 위해서 가지각색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내듯 끄집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에리봉은 고도로 훈련받은 인류학자이고 레비 스트로스는 주요 정보 제공자가 되어 하나의 민족지(Ethnographie)를 완성해낸 것이다.
이 책의 전체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레비 스트로스가 평생 학문적으로 교류했던 사람들과의 관계형성 과정에서 주고받았던 학문적 영감의 이해를 통해 현대 사상사의 큰 줄기를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의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영미학자들과 평생 지속되었던 우호적 또는 비우호적 관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레비-스트로스의 학문 작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의 입을 통해서 언급되는 사상가들의 이름을 들기도 버거울 정도이다. 칸트나 헤겔은 물론이고 루소, 마르크스, 프로이트, 라캉, 야콥슨, 브로델, 뒤메질, 베이유, 사르트르, 브르통, 베르그송, 에른스트, 보아스….
둘째는, 레비 스트로스가 학자로서 한 평생을 살아오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한 인간, 한 학자,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어떻게 조화시켜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직접 쓴 책들에서는 쉽게 접해볼 수 없던 것들이라 아주 흥미롭다. 철학에서 민족학으로 전공을 바꾸며 남미인디언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평생 대학의 정식 교수로 재직하지 못해 교수이기를 거의 포기했지만, 결국에는 세 번의 도전을 통해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임용되던 과정, 사회주의에 심취하면서 사회참여와 학자로서 느꼈던 갈등과 68학생혁명에 대한 비판, ‘신화론’ 4권을 완성하기 위해 거의 20여년간을 엄격하면서도 고통스러웠던 일상과 싸웠던 기억들이 제시된다. 이것을 레비-스트로스는 돈키호테주의의 본질이라고 표현한다. 즉 과거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끈덕진 요구가 인생의 권태로움에 대한 자기방어를 가능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작업들 때문에 항상 불안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많은 저작물에서 제시된 다양한 개념에 대한 레비 스트로스 자신의 구체적인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사회기호로서의 ‘여성교환’, 인간의 보편적 동질성을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데 영향을 미쳤던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실천적 실존의 이해에 필수적이었던 마르크시즘, 본인의 의도와 달리 심하게 왜곡된 채 사용되고 있어 불만스러운 ‘구조’개념, 주체와 객체를 분리해 설명하려 했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 근대적 사고방식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현재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신화적 사고방식’(Bricolage 개념으로 설명)을 통해서 감성계와 지성계의 대립을 넘어서 설정하고자 했던 ‘구체의 과학’, 연관관계가 규정되지 않고는 사용될 수 없는 ‘비교방법’ 등에 대한 것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레비 스트로스가 일생을 바쳐 일구어낸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루소를 지성계와 감성계의 연합을 추구한 인간과학의 창시자라고 칭한다. 즉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는 나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지만, 루소를 읽노라면 나는 열광한다’는 그의 표현은 루소를 통해서 가장 원초적인 인류학적 영감을 얻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는 모든 민족학자는 자아를 거쳐서 자아로부터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백록’을 쓴다고 했다. 민족지학적인 경험은 연구자 자신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경험적인 탐구이기 때문에 자아를 찾아 이국 땅을 모험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다면 험난한 모험을 자청하며 이국 땅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가 쓰는 민족지는 바로 자신을 찾기 위한 것이라는 이 말은 평생을 자기 찾기를 위해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인류학자의 절실한 자기고백일 것이다. 인류학은 슬프게도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면서 에리봉과의 대담을 마치지만, 이 말만큼 자신의 학문에 대한 끈질긴 애착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학문적 열정에 숙연해진다. 단지 그 앞에 놓인 시간이 안타까울 뿐이다.
류정아 서울대 강사·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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