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명호/반크

  • 입력 2003년 2월 7일 18시 27분


동해의 명칭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다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주장을 하는 주체가 정부였다면 요즘은 민간단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가 미지근하게 앞장섰을 때보다 월등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 최대의 지도출판사 그래픽맵스는 자사 웹사이트의 동해지도 밑에 이런 설명을 붙여 놓고 있다. ‘1990년대 말 ‘반크’는 전 세계 지도제작사 여행사 지리웹사이트를 대상으로 동해를 병기토록 편지와 e메일 보내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라 많은 지도출판사와 교육용 웹사이트 참고서적들은 일본해와 함께 동해라는 명칭도 표기하고 있다. 월드애틀라스닷컴은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다. 그래서 양국이 한 가지로 결정하기까지는 우리 지도에 두 명칭을 모두 게재할 것이다.’

▷각 국의 관공서, 교육기관 및 유명 포털사이트에 지도를 제공하는 이 회사의 결정은 의미가 크다. 동해라는 표기가 먼저이며 옳다는 우리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 표기 변경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수많은 이용자들에게 한국인들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도 한다. 이처럼 큰 성과를 올린 것이 예산을 엄청나게 쓰는 정부가 아니라 반크라는 한 작은 네티즌 단체라는 점이 놀랍다.

▷반크는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영문 약자다. 1999년, 당시 대학생이던 박기태씨(30)가 펜팔을 위해 만든 사이트가 모체가 되었다고 한다. 외국 대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너무 무지한 데 놀라 한국을 알리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반크를 조직했다. 이들이 그동안 바로잡은 오류들은 수없이 많다. 2000년 8월 세계 제일의 권위를 지닌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에 항의 e메일을 보내 지도에 일본해로만 표기하는 데 대한 사과와 병기 약속을 받아낸 것도 그중 하나다.

▷더 놀라운 것은 현재 1만2000여명의 반크 회원 중 70%가 초중고교생이라는 사실이다. 하나 하나로는 작고 약한 이들이 한데 뭉쳐 정부도 하지 못하는 큰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무기’는 단순하다. e메일로 잘못된 정보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시정을 요구하는 것뿐이다. 이들이 갖게 된 지식과 경험, 자긍심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반크가 다음달부터 해외 유력 사이트와 교과서 출판사들을 상대로 우리 역사에 대한 잘못된 기술 바로잡기 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 ‘작은 거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