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룡/방송을 직접 통제하겠다?

  • 입력 2003년 2월 13일 18시 36분


방송의 시대가 활짝 열린 듯 싶다. 곧 출범할 새 정부의 홍보수석비서관과 대변인, 그리고 외신 대변인에 각각 방송계 인사가 ‘파격적으로’ 발탁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전파매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중파 TV 3사에서 배출된 인사가 비서실 홍보 요직을 한 자리씩 맡게 된 것이 새삼 이상할 것도 없겠다. 다만 대통령비서실이 ‘홍보’만 담당하지 않고 언론개혁, 특히 방송개혁을 추진하는 주체가 된다면 과연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친정에 비수를 들이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때 대학가에는 국회로 가려면 정치외교학과에 가기보다는 기자가 돼야 한다는 자조의 소리가 있었다. 국회의원 가운데 언론계 출신 인사가 무려 60여명에 이른 적이 있었던 탓이다. 이제는 방송이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되었다.

▼방송委 허수아비로 만들건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방송정책을 어디서 맡아야 하는지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12일 문화관광부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답하면서, 현재 방송위원회 소관으로 돼 있는 방송정책권을 정부가 환수해야 한다고 인수위에 보고했음을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설치하되 방송정책권은 과거처럼 정부가 갖고 위원회는 프로그램의 심의 및 규제만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가 방송을 직접 통제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방송은 외형상 ‘공영’이고 운영방식은 ‘상업’, 인사와 보도 태도는 ‘관영’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통합방송법은 방송의 인허가와 정책결정권을 ‘미흡한 대로’ 방송위원회가 관장토록 해 방송 독립의 의지를 보였다. 오랫동안 방송매체는 정부의 하부체계로서 권력의 버팀목, 정권 홍보의 나팔수 역할을 해왔다. 이 같은 권력과 언론의 유착을 막기 위해 독립규제위원회는 필요하다. 곧 정부가 방송미디어를 직접 규제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독립된 규제위원회로 하여금 방송산업에 관한 기본정책을 세우고 그 정책의 수립과 면허 발급 등 행정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의 경우 행정부와는 별도로 독립규제위원회를 갖고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대표적일 것이다.

다만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면서 기술과 운용을 아우르는 부처의 필요성이 대두돼 왔다. 이에 부응해 방송통신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만약 문화부장관의 주장대로 방송위원회가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규제만을 맡는다면 방송위원회는 허울만 남고 정책권을 갖는 정부의 입김은 한층 세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심의란 검열의 다른 이름이다. 행정기구가 방송의 검열을 맡는다는 것은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다. 반드시 자율적인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방송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한 문화부장관은 이날 민영 미디어렙에 관해서 한 개쯤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했다. 미디어렙이란 방송광고의 판매를 대행하는 전문회사를 말한다. 그러나 ‘민영’을 ‘허가’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이것은 마치 신문의 공동배달제와 같은 것으로 자율에 맡길 일이지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강제해서는 안 된다. 민영 미디어렙 문제는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광고영업을 독점 대행하고 있는 한국방송광고공사를 개편하는 것으로 풀어야 한다.

▼새정부도 언론분열 꾀하나▼

김대중 정부는 언론개혁이란 이름으로 방송과 활자, 메이저와 마이너의 대립구도를 세우고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구사해왔다. 새 정부 역시 그 연속선상에 있는가. 방송은 우군이고 신문은 적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한, ‘참여정부’의 언론개혁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언론개혁의 타깃은 사기업인 신문이 아니라 무늬뿐인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문화부장관의 마지막 ‘선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반문화적이자 반언론적이 아닌가 싶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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