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제2건국위가 내놓았던 이른바 개혁방안은 ‘경찰 세무 보건 등 일선 민원행정에서의 국민불편 해소’ ‘공무원 의식교육을 통해 건국운동에 앞장서도록 함’ ‘감사원 구조개혁’ 등 정부 내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다.
이 조직은 중앙에 400명의 위원을 두고 지방에는 2만명이 참여하는 시군구별 위원회가 활동하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각 부처 장차관은 물론이고 지역 유지들까지 거의 모두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했다. 제2건국위가 아니라 제2정부였던 셈이다. 당시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은 “제2건국위는 제2의 건국에 필요한 제도 의식 생활개혁 등 3대 개혁운동을 추진하고 민간부문 활동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2건국위는 정부와 정치권 등 기존 제도권을 깨뜨리기 위해 초헌법적 권력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에 따라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을 모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제2건국위가 본격적으로 활동했다면 중앙에선 정부부처와 제2건국위 중앙위원회, 지방에선 시·구청과 제2건국위 시·구 위원회의 권력투쟁이 불길처럼 번졌을 것이다.
하지만 제2건국위는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했다. 4년간 125억원의 예산을 쓰면서 명맥을 유지해 왔지만 그동안 한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건국위는 올해 신지식인 발굴, 민족대화운동, 기본 바로 세우기를 3대 핵심 사업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출범 초의 거창한 계획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도 11일 전북지역 국정토론회에서 “지방의 민주 혁신을 중앙정부가 나서서 할 방법이 없고 제2건국운동이 그런 시도를 했으나 성공 못했지 않은가”라며 제2건국위의 실패를 지적했다.
제2건국위가 더 이상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길은 즉시 간판을 내리는 것뿐이라는 생각이다. 정치권력이 무슨 ‘운동’ 같은 것을 관제(官製)로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었다.
임규진기자 경제부 mhjh22@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