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침, 잠에서 깨어나, 몇 가지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이 저고리 소매를 꿸 팔이 없다, 이제 이 고무신을 신을 발이 없다, 이제 이 가방 손잡이를 잡을 손이 없다, 이 빗으로 빗을 머리칼이 없다, 이 모자를 쓸 머리가 없다…이해는 하지만 전부 태워버리면 둘이 돌아왔을 때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가게 물건의 매입과 매상과 종업원 생각을 하면서 손을 바쁘게 움직여, 꼬박 이틀에 걸쳐 유품을 고리짝에 담았다.
희향은 복조리를 주워들고 우물 옆에 쌓아둔 고리짝에 한 개씩 씌웠지만, 고리짝에서 비어져 나온 치마저고리와 바지저고리, 마고자와 두루마기와 조끼, 버선과 토시, 고무신과 짚신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희향은 저고리 소매에서 성냥갑을 꺼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머리가 마비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꿈속에 있을 때는 현실이라고 굳게 믿는 꿈을…, 꿈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다.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그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고 살며시 이불에서 빠져나와 아침을 짓고 도시락을 싸고, 그 아이를 흔들어 깨운다. 소원아, 일어나라, 아침이다, 빨리 안 일어나면 아침도 못 먹고 학교에 가야 한다. 도저히 이게 현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마치 남에게 생긴 불행한 일을 얘기로 듣고 충격을 받은 것만 같다.
나는 어제와 오늘도, 궂은날과 갠 날도, 밤과 낮도 구별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꾸미고는 어김없이 앞으로 나아가, 지금도 나를 끌고 가고 있다. 무겁고 커다란 바퀴로 짓뭉개주면 좋으련만, 시간은 나를 사슬로 꽁꽁 묶은 채 나아가고 있다.
잠이 온다. 서 있기가 힘들다. 하지만 잠들기가 두렵다. 누우면 아픈 가슴을 견딜 수 없어 몸을 뒤척이고, 첫닭이 울 때까지 하염없이 몸만 뒤척이는 밤도 있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