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문명/권용립 지음/372쪽 1만8000원 삼인
냉전이 끝나면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최근 들어 부쩍 힘 중심의 일방주의적 정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한 대답은 현실주의자들의 권력 개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고전적 관념에 따르면,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기적 이익을 추구한다. 따라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지닌 미국이 일방주의적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력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윈주의적 권력 관념은 규범적 차원에서 비판될 뿐 아니라 경험적, 이론적으로도 옳지 않다. 초강대국은 협소한 단기적 이익만이 아닌, 힘의 우위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장기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자신의 힘의 우위가 재생산되는 국제체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단기적인 국익 추구보다 중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이 일방주의적인 이유는 ‘미국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성격 때문에 일방주의적 행태가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적’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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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격이다. 뉴딜시대와 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의 국가적 성격은 크게 변화했다. 복지국가로 변화하면서 국가의 힘이 크게 증대한 동시에 2차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 안보국가 또는 군사국가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 것이다. 1차세계대전에 대규모로 참전했던 군이 종전 직후 해체되었던 반면,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군사 부문이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해외에 주둔하거나 여러 차례의 전쟁에 투입되곤 했다. 냉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적 전통과는 달리 군사 부문이 국가의 정치, 경제, 외교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군사국가적 성격을 지닌 국가의 대외정책은 힘을 중시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유일 초강대국이라면 일방주의적 외교로 귀결될 것이다.
둘째는 미국 정치제도의 특성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체제는 권력이 분할, 분산되어 있어 사회집단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창구가 크게 발달되어 있다. 200년 전에 그렇게 고안되어졌고, 이후 그렇게 발달되어 왔다. 외교정책에서도 국내 사회집단들의 이해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제적 합의라도 국내의 강한 이익집단이 반발하면 지키기 어렵다. 국제 협력이나 국제적 공익보다는 국내 여론과 국내적 이익이 앞서게 되고, 이는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으로 귀결된다.
셋째는 이념적 기반이다. 식민시대와 독립 당시부터 미국인들의 마음속에는 미국 예외주의의 관념이 강하게 자리잡아 왔다. 신대륙의 미국은 봉건시대의 유산을 지닌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탄생했고 다르게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미국적 정신’의 근원을 청교도 정신이나 자유주의 또는 공화주의의 어느 것에서 찾든, 그 근저에는 이러한 예외주의의 관념이 깔려 있다. 문제는 ‘다른’ 것은 곧 악이고 자신은 선이며, 선을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믿음에 있다. 이러한 예외주의적 사고는 미국 외교의 중대한 기로마다 동원되고 확산되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고립주의든 개입주의든 그 결과가 일방주의일 수밖에 없다. 냉전이 종식된 뒤에도 미국 내에서 국제협력과 공존에 대한 담론보다는 새로운 잣대에 의해 새로운 악을 찾는 일이 분주히 벌어지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의 정치문명’은 셋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독할 책이다. 저자의 의도는 이보다 더 큰 수준에서 ‘미국’이라는 존재를 이해시키려는 데 있겠지만, 이라크전쟁과 북핵문제에 직면한 우리로서는 미국의 외교행태에 일차적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저자는 미국 역사학이 찾아 온 자기 정체성을 분석하여 미국 정치문명의 성격을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으로 규정하고, 그 대외적 표현이 지난 200년간의 외교정책이며 그 연장선상에 탈냉전시대 미국 외교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의문을 품은 독자라면, 이라크전쟁의 향로가 궁금하고 북핵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독자라면 권 교수의 또 다른 역저 ‘미국대외정책사’를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해답의 실마리는 권 교수가 제시할 것이다.
백 창 재 서울대 교수·정치학
◇미국은 영원한 강자인가?/장 프랑수아 르벨 지음 조승연옮김/
312쪽 9500원 일송북
번역된 제목은 원제의 의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엉터리 제목이다. 원제는 반미강박관념(L'obsession anti-am´ericaine). 유럽인의 반미감정 속에 들어 있는 강박증적 성향을 밝힌 책으로 유럽 대륙의 쌍두마차 프랑스와 독일이 이라크전 개전을 놓고 미국과 한판 붙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논지는 단순하다. 유럽은 미국보다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으면서도 늘 미국을 무시해왔다, 아니 잘하는 게 없기 때문에 미국을 무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저자는 유럽인이고, 유럽인 중에서도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프랑스 한림원 회원이다.
‘유럽으로 말하자면 세기의 주요 범죄적 이데올로기(공산주의와 파시즘)를 고안한 장본인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이 유럽대륙에 개입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중략) 미국의 패권은 분명 미국의 고유한 요소들로 인해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 특히 유럽국가들이 저지른 과오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최근 프랑스는 미국이 아프리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아프리카에서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1994년 르완다 종족의 말살계획과 뒤이은 자이르의 분할은 프랑스에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신용을 잃은 것은 프랑스 자국의 책임이며, 프랑스의 신용 상실로 미국이 프랑스의 빈자리를 메우게 되었을 뿐이다.’(39쪽)
‘옛 유고슬라비아에 미국이 개입한 것을 알고 몬태나와 테네시 시민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생각해보자. 유럽이 수백년간 심혈을 기울여 정교하게 빚어놓은 작품인, 발칸반도라는 유혈이 낭자한 수렁에 뛰어들어 과연 얻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유럽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빚은 유혈 혼돈, 그 혼돈을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발칸반도의 학살사건을 멈추게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보스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에서 차례로 군사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런데도 유럽인들은 배은망덕하게 미국을 완전히 겁에 떨고 있는 제국주의자들로 취급하고 미국 군대가 철수한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미국을 고립주의 겁쟁이로 치부하면서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42, 43쪽)
‘냉전시대에 미국에 적대적인 감정을 보인 사람들은 주로 공산주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에 대한 증오심이 더욱 커진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동맹국들조차도 미국을 증오하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이 쿠바에 통상 금지조치를 내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주주의 국가든 이슬람권 국가든 서슴없이 피델 카스트로 편을 들어주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을 비난할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기 위해 단순한 통상 금지를 경제 ‘봉쇄’로 허위 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쿠바는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와 교역 관계를 유지했다. 따라서 쿠바의 생활수준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통상 금지조치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에 있었다.’(35쪽)
‘1997년 국제연합의 보호 아래, 교토에 모인 168개 사절단이 가스 배출제한 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2001년 협약이 발효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교토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곧장 미국에 대한 분노와 비방이 유럽을 중심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불행히도 쉽게 조회해 입수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지나쳤다. 우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1997년부터 벌써 미국 상원은 95 대 0으로 교토협약을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이 느닷없이 그런 조치를 단행한 것은 아니다. 그런 다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후임 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직전, 미국이 다시 교토협약을 준수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서명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규범에 따르면 임기 말 대통령의 시행령은 국가의 정치적 미래와 연관된 중요한 문제들에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이 경우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의도는 명백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가시면류관을 물려줌으로써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54쪽)
한마디로 저자는 ‘신흥종교’나 다름없이 확산되고 있는 전 세계 반미주의 추종자들의 맹목적 믿음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전쟁에 반대한다/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284쪽 1만3000원 이후
하워드 진은 놈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 내의 가장 반미적인 지식인으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2차 세계대전부터 리비아, 베트남, 코소보와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이라크 전쟁까지 미국이 개입하고 일으킨 전쟁들을 성찰하며 철두철미한 반전론을 펼치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피에 굶주린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보기에 세르비아인들은 모두 가차없이 징벌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자신의 지도자들이 저지른 행위를 ‘암묵적으로 용인’한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쟁범죄에 관한 새로운(?) 정의다. 이제 우리는 8년 동안의 경제제재로 야기된 수십만 이라크인의 죽음을 우리 미국인이 모두 ‘암묵적으로 용인’했다는 이유로 어느 이라크 언론인이 미국 전역의 슈퍼마켓을 폭격하자고 호소하는 걸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인가.”(24쪽)
그는 상대적 수치로 전쟁을 옹호하는 논법에 반대한다. 다시 말해 세르비아인들을 죽인 것보다, 세르비아 보안대가 더 많은 알바니아계를 죽였다고 말하면서 유고 민간인에 대한 폭격을 얼렁뚱땅 넘겨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10만명이 죽은 1945년 연합군의 독일 드레스덴 대폭격을 유대인 대학살을 언급하면서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수십만명의 일본 국민이 죽은 사실을 일본군이 그 전쟁에서 벌인 끔찍한 행위로 정당화할 수 없다.
밀로셰비치가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피고석에 선다면 클린턴도, 올브라이트(당시 미 국무장관)도, 코언(당시 미 국방장관)도, 클라크(당시 NATO연합군 사령관)도 함께 피고석에 서야 한다는 주장에는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그가 주장하는 반전론의 핵심에 비로소 다가서는 느낌이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전쟁은 나쁜 것이 됐으나 2차 대전을 계기로 전쟁은 다시 좋은 것이 됐다. 2차 대전에서 파시즘을 몰아내는 것은 좋은 대의였다. 그렇다고 그 전쟁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좋은 전쟁이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전쟁이 낳은 증오는 나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은 미국 시민이기도 했던 일본계 가족들을 강제수용소에 몰아넣었다. 드레스덴과 함부르크, 도쿄 그리고 마침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폭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다른 대안이 있었는지, 5000만명의 사상자를 내지 않고도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었는지는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파시즘을 몰아내기 위한 2차 대전이 전 세계인의 사고에 미친 장기적 효과는 치명적이고 심대했다. 1차 대전의 무의미한 살육 이후 철저하게 불신됐던 전쟁은 다시 한번 숭고한 것이 됐다. 2차 대전이 절대 선이라는 가정은 전쟁 자체에 정의라는 아우라를 만들어줬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저항운동이 없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나치즘 대신에 공산주의가 전쟁의 이유로 확실히 자리를 차지했으며, 이제 더 이상 공산주의라는 위협을 사용할 수 없을 때면 사담 후세인 같은 손쉬운 적이 히틀러와 비교됐다. 2차 대전이 낳은 최악의 결과는 전쟁이 정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존속시킨 점이다.
저자에게 ‘정당한 전쟁’은 없다. 그렇다면 후세인에 대한 저자의 대안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글에서 그 대안의 윤곽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는 파업과 보이콧, 선전 등 각기 다른 창조적인 저항방법을 사용해 폭력 없이도 폭정에 맞선 사람들의 성공사례로 가득 차 있다. 2차 대전 뒤 우리는 이란 니카라과 필리핀 아이티에서 대규모로 조직화된 대중운동이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마침내 폭정자들을 외국으로 도망치게 만든 모습을 봐왔다.’ 후세인이나 김정일 같은 독재자가 언젠가는 그 나라 민중에 의해 쫓겨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기자의 생각은 지나친 낙관론일까.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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