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 부인은 일찍 과부가 됐다.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두 아들은 스승에게 보내 공부를 시켰다. 하루는 처마의 낙숫물이 땅에 떨어지는데 쨍그랑 소리가 났다. 밑을 보니 땅 속에 커다란 항아리가 묻혀 있는데, 그 안에는 백금이 가득했다. 임씨 부인은 재빨리 항아리를 파묻고 그 사실을 모르게 한 뒤 집을 팔고 이사했다.
후일 친정 오라비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다. 오라비가 “어째서 금을 그렇게 더러운 것으로 여겼느냐”고 묻자 “갑자기 얻은 재물은 재앙”이라고 대답했다. 임씨 부인은 “아무런 까닭없이 금덩이를 얻은 것은 상서럽지 못하며 또 아들들이 궁핍을 알아야 재물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거처를 옮겨 재물에 대한 욕심을 끊은 것이다”고 말했다.
신광현이 지은 야담집 ‘위항쇄문’에 나오는 한 대목. 신광현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임씨 부인에 대해서도 김학성의 어머니라는 것 밖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큼은 복권 한 장에 ‘대박’을 기대하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여인 60여명의 일화를 모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어우야담’ ‘서포집’ 등 다양한 문헌에 등장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주제별로 추려 번역해 펴냈다. 책 말미에는 한문 원문도 나온다.
임씨 부인의 이야기처럼 교훈적인 주제만 다룬 것은 아니다. 어우동, 황진이 등 뭇 남성을 치맛자락에 품었던 여인들의 이야기며, 질투가 심해 남편의 수염을 뽑았던 송씨 부인의 이야기 등 조선시대 여인 군상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책 제목처럼 ‘당당하게’ 살았던 여인의 이야기도 있다. 조선 태조가 의정부에서 신하를 위한 연회를 마련했다.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고려의 옛 신하들. 이 자리에서 시중을 들던 기녀 설중매를 한 정승이 희롱했다. “너는 아침이면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저녁이면 서쪽 집에서 잔다고 하더구나.” 이에 설중매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 천한 기생이 한때 왕씨를 섬겼다가 이제 이씨를 섬기는 정승을 모실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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