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뚫린 軍 무기고

  • 동아일보
  • 입력 2003년 2월 14일 18시 42분


“다른 곳도 아닌 군부대의 탄약고 도난사건이 ‘연례행사’처럼 돼버렸으니….”
13일 현역 육군 하사가 무기고에서 훔친 소총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려 한 사건(본보 14일자 A30면)을 발표하던 군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해도 군의 총기 관리 실태가 한심한지 한숨만 내쉬었다.
국방부는 지난해 3월 해병대 무기고 탈취 사건과 10월의 현역 육군 상사 농협 소총 강도사건 이후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고 강조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그 다짐은 또 다시 ‘공염불’이 돼 버렸다.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주요 군 시설물에 대한 보안과 경계가 얼마나 허술한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범인은 지난해 8월 초 무기고에서 K-1 소총 1정을, 이달 초에는 상황장교로부터 무기고 열쇠를 넘겨받아 45구경 권총 1정도 훔쳤다. 지난해 9월에는 탄약고까지 들어가 소총과 권총 실탄 380여발도 훔쳤다. 24시간 철통 경계가 필수적인 무기고와 탄약고를 ‘제집 안방’처럼 드나든 꼴이다. 특히 범인은 수 차례에 걸쳐 담당장교가 책상 서랍 속에 보관 중이던 무기 탄약고의 열쇠를 빼내 이용했지만 단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았다. 부대 지휘관들이 반 년 가까이 도난 사실을 몰랐다는 대목도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범인이 소총과 실탄을 훔친 뒤 포장 박스를 원래대로 위장해 도난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매년 몇 차례씩 각급 부대 단위로 총기 탄약 조사가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변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이번 사건은 지난해 10월 육군 상사의 농협강도 사건 직후 전군이 실시한 총기 실탄 일제 조사 때도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는 “단 한 건의 도난 사고도 없다”고 발표했다. 일선 부대가 탄약고의 이상 유무를 발견하고도 허위 보고를 했거나 군 당국이 ‘조사 시늉’만 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11일 부산에서는 달리는 승용차 운전석을 향해 총탄이 잇달아 날아든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제 총탄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육군 하사가 훔친 총이 인터넷으로 판매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군의 사명은 전쟁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

윤상호기자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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